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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은 자유, 발레도 집짓기도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45회

by Sujiney

연희동의 작은 내 단독주택, 중심의 집에서 생활한 지 열흘 남짓. 매일의 출근과 귀가가 이렇게나 애틋할 수 없다. 첫사랑 같다가도, 아니지, 신혼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려면 어때. 그냥...좋다.

이 집을 짓는 지난한 과정에서 든든한 응원을 해주었던 소중한 친구, C에게 문득 얘기했다.
"있잖아, 꼭, 집과 결혼하는 거 같아."
진짜 그랬다.



By Sujiney


이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옳은 일이다. 사람과 하는 결혼은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사람의 사랑은 2월 초순 매화꽃망울처럼 약하디 약하니까. 찰나에 취해 영원을 맹세하는 일이기에,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래서 아름답다.

하지만 집과의 결혼은 다르다. 게다가, 그 집이 내가 나를 알아가면서, 바닥을 치고 다시 딛고 올라오면서 지은 '중심의 집'인 경우엔 더더욱. 나만 잘하면 된다. 나만 변하지 않으면 된다. 중심의 집은 이미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내가 할 일은 내 중심을 잡고, 필요할 땐 그 중심을 옮기며, 다시 세우고 잡는 일.


우리 동네 연희동. 바닥의 꽃도 꽃이다. By Sujiney



아침마다 이젠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에 눈이 떠진다. 오늘도 또 하루가 시작된다는 게 설레는 게 얼마만인지. 대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회사라는 곳에 실망하는 건 그만두기로 한다. 실망은 기대가 있어야 한다. 기대를 않기로 한다. 회사와의 관계는, 건조하게 가져간다.

뜨겁게 최선을 다해야 할 곳은, 나의 집, 나의 삶. '중심의 집'의 모티브가 되어 준 내 삶의 동아줄 발레는 알려줬다. 바닥을 치고, 그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갔어도, 내가 내 중심을 찾으려 하고, 잡아보려 하면 언젠가는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그 중심을 바꿔야할 때도, 첫발이 두려울 뿐, 계속 잡으려 하면 휘청여도 내 코어 근육이 나를 도와준다고.

구현모 선생님의 코멘트.
"발란스를 잡기 위해 바에서 손을 놓은 뒤엔 절대로 바를 다시 잡지 마세요. 혼자 흔들거려봐야 내 몸이 중심을 잡는 훈련을 합니다."

박지우 선생님의 코멘트.
"중심을 옮기는 건 확실히 해야 해요. 어중간하게 가운데에 두면, 그 누구도 밸런스를 못 잡습니다."

기억하자. 중심의 집과 나의 중심.


By Sujiney


중심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버드나무 가지가 휘듯, 이리저리 휘면 또 어떠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버드나무 가지가 낭창낭창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그 줄기와 뿌리가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어서다. 발레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용수들의 폴드브라와 에뽈망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들의 코어가 세상 단단하기 때문이다.

중심은 곧 자유인 것이다.



교토의 버드나무. By Sujiney


조심스럽게 매순간, 나의 최선을 쌓아가기. 그 과정에서 또 누군가 내 중심을 흔들고 뽑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뽑히지 않게 내 중심을 잡고 지키는 건, 나 자신이다. 다행이다, 중심의 집이라는 중심의 보금자리를 지을 수 있어서.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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