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겸손해진다, 취미발레 공연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79화

by Sujiney

책을 읽다 보면 쓰고 싶듯, 공연도 보다 보면 오르고 싶다. 발레를 배우다보면 발레 공연이며 콩쿨에 참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연이라는 건 만만치 않다. 특히나 꿈의 작품인 경우엔.

브런치스토리에도 아래처럼 썼지만, '카르멘'을 오래 동경해왔다. 발레 여성 캐릭터 중에선 특이한 카테고리다. 공주도, 요정도, 귀신도 아니어서다. 담배 공장에서 일하며, 자기 주장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며, 왕자님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선택한다. 튀튀도 입지 않는다. 붉고 검은 강렬한 레이스의 의상에 맨다리로 춤을 춘다.

이 캐릭터에 오랜 기간 매료되어 다양한 무용수들의 작품을 봐오다가, 결심을 굳혔다. 비너스발레학원 2회 공연에, 도전해보자.



시작은 쉽지 않았다. 영상 속 발레리나들은 세상 쉬워보이게 춤을 춘다. 쉬워보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발레를 하다보면 알게 된다. '카르멘'은 가뜩이나 작품반 등에서도 익힐 기회가 흔지 않으므로, 어려웠다.

포기할까?
어떤 작품은 도전하는 것보단 감상으로 멈추는 게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카르멘'이 그런 작품 아닐까.


언젠가 다음 생에서라도 꼭. Diana Vishineva


하지만 역시, 다음의 두 존재 덕에 1월 10일 토요일 무사히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

선생님, 그리고 시간.

나 혼자서는 영상을 10번 넘게 봐도 동작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어려웠는데, 엄규성 원장님이 가을 쯤 개인 지도를 해주신 뒤엔 조금씩 감이 왔다. 선생님이 짚어주시는 포인트을 이해하고 몸으로 표현해보면서, 조금씩 동선이며 감정 표현이 정리되어 갔다.

하지만 나는 천재가 아니다. 선생님이 알려주셨다고 바로 무대에 오를 수는 없는 법.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시간의 힘.



무대. By Sujiney


매주 일정 시간마다 때로는 특정 동작을, 때로는 동선을, 때로는 음악을 계속 연습하고 들었다. 카르멘은 어떤 심정으로 이런 동작을 했을까, 생각해봤다.

그러면서 10월이 되어 단풍이 들고, 11월의 스산한 계절을 지나, 12월의 크리스마스 무렵. 조금씩 나의 카르멘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아쉬움은 물론, 든다.

하지만 노력과 시간이 더해지면, 포기할까 싶었던 것들도 조금은 나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맛본 것으로 우선 의미를 둬보자. 시간의 힘에 겸손해진다.

공연을 한 번 해보면, 그 공연의 맛을 잊을 수 없는 이유. 시간과 노력이 맺어내는 결실을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취미발레인들의 공연에 완벽한 훼떼 32회전은 없어도 나름의 감동이 있다고, 조심스럽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카르멘, 또 만나고 싶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By Suji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