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토종이다’ 세 번째, feat. '닥터 포스터' 원작
‘부부의 세계’의 원작인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창조한 마이크 바틀렛과의 인터뷰 뒷얘기. 그 두 번째 이야기에 오신 여러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이번 주도 희애 언니를 열렬히 응원하며 글 시작.
바틀렛과의 인터뷰 성사까지의 과정은 지난 회에 자세히 풀었다. 영어 전화 및 e메일 인터뷰 기술에 대해선 차차 노하우를 공유할 생각. 이번엔 이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부부의 세계’라는 제목, 영어로는 어떻게 옮겨야 할까?
물론 정석대로 풀자면 이 정도가 되겠다.
‘The World of a Married Couple’
문법적으로도 오류 없고, 원문에도 충실한 번역이다. 근데, 뭔가 2% 부족하지 않나. 원작인 ‘닥터 포스터’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서 ‘포스터 의사 선생님’이라고 했다면? ‘부부의 세계’와 같은 감칠맛 만점이고 한국인의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은 없었을 터.
그래서 내가 임의로 번역해 바틀렛에게 보냈던 제목은 이랬다.
‘The World of Mr. and Mrs.’
번역해도 그대로 ‘남편과 부인의 세계’ 정도이니 오리지널에서 과히 벗어나지도 않고, 영어권에선 부부를 두고 Mr. and Mrs. 라고 표현을 많이 하니까. 바틀렛에게 제목 어떠냐고 물으니 “It’s a great title”이란 답이 왔다. 주연배우들의 연기, 특히 김희애 배우의 몰입도가 대단하다는 극찬과 함께.
하지만 지금 보니 이렇게 번역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Between Mr. and Mrs.’ 혹은 ‘Into the World of Mr. and Mrs.’ 좀 더 역동적인 느낌을 주도록 말이다. 굳이 원문에 글자 그대로 얽매이는 대신, 원문이 전하는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해 번역을 하는 언어의 적확한 표현으로 치환해내는 것, 그게 좋은 번역이다. ‘기생충’으로 함께 스타덤에 오른 영화인이자 통역가인 샤론 최가 대표적 사례. 송강호 배우의 “저를 이 영화에선 원 없이 볼 수 있어요”라는 말을 “You’ll be sick of me after watching this film”이라고 통역했다. 엄지 척.
있는 그대로의 번역을 뜻하는 verbatim 번역이 한국어-영어 사이에선 잘 안 통할 때가 많다. ‘부부의 세계’라는 두 개 명사의 연결에 동적인 움직임을 불어넣어 ‘Between Mr. and Mrs.’ 또는 ‘Into the World of Mr. and Mrs.’라는 식으로 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느낌적 느낌.
수많은 한국 영화가 해외에선 다른 제목으로 개봉했다. 해외에서 ‘A Tale of Two Sisters’라는 제목으로 배급된 영화의 한국어 원제는 뭘까. 힌트, 김지운 감독 작품이다.
1) 두 자매 이야기 2) 언니와 동생 이야기 3) 장화 홍련
답은 3)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은 제목이다. 아무리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장화 홍련’을 그대로 ‘Janghwa Hongryeon’이라고 옮겼다면? 대참사다.
대신 영어권 아이들에게 필독서로 꼽히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를 스마트하게 차용해 의미로 살리는 번역을 해냈다. 누가 했는지 10점 만점에 10점.
샤론 최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럼 ‘기생충’의 제목 어떻게 번역됐을까.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기생충은 기생충이다. ‘Parasite’라는 원제 그대로다. 단 봉 감독의 전작 중 ‘괴물’ 기억하시는지.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e Host’였다. ‘숙주’라는 의미로 그리 붙였다고 한다. ‘숙주’에서 ‘기생충’으로 이어지다니, 봉 감독은 다 계획이 있었다.
사실 영화 제목의 번역만 갖고도 재미있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래서 10년도 전인 2009년에는 이런 기사도 썼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3644635
그때도 썼지만, “번역은 반역”이란 말도 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원제는 ‘Lost in Translation’이었다. 이 원제 그대로 번역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하나의 길을 버리면 새로운 길이 나타나는 게 세상 이치. 길이 안 나타나면 닦으면 되는 게 인간의 삶이다. 원문에 스스로를 얽매는 족쇄를 과감히 깨고, 대신 원문에 충실하되 해당 언어의 원래 뜻을 잘 표현하는 표현을 찾아내는 것, 그게 좋은 번역일 터다.
다음엔 글로벌 인물들과의 인터뷰 뒷얘기를 공개하고자 한다. 아랍의 왕자부터 ‘집 없는 억만장자’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대기 중. 누구부터 데뷔(?)시킬지 행복한 고민 중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하시길.
By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