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져야 높아져요” 발레는 인생이다(3):플리에

브런치 시즌2 by SJ: 플리에(Plié)

by Sujiney



발레 인생 시즌2 개막 후 벌써 두 달. 10년을 했건만 다시 기초반으로 돌아온 내게 가장 어려운 걸 꼽는 건 미션 임파서블이다. A부터 Z,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전부 다 어려우므로.


지난주 글의 키워드였던 그랑 주떼(grand jeté)가 어렵다는 건, “정우성은 잘생겼다” “악플은 나쁘다”처럼 당연한 얘기. 점프로 뛰어올라 양다리를 일자로 쫙 찢은 채 도약하는 동작이 쉬울 턱이 있나.


새삼스러운 충격은 따로 있었으니, 기본 of the 기본인 플리에(plié)였다.


발레 클래스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적이 있다면 제일 먼저 배우는 동작이 플리에다. 사전적 의미인 ‘구부리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뒤꿈치를 서로 붙이고 서서, 무릎을 구부리는 것. 모든 클래스의 시작은 플리에다. 나는 10년 간 거의 매일 이 플리에를 하고 있었던 셈.

그런데 그 플리에가, 새삼 어렵다.


프랑스의 발레용품 브랜드 Repetto의 홍보 사진. 저 발등 좀 보소. 세상 쉬워 보이지만 세상 어렵다. [Repetto]


내 발레 인생 시즌2의 스승님, 김현우 발레조아 원장님은 지난주, “모든 동작의 기본인 플리에의 목적은 에너지를 무릎에 축적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조지 발란신(1904~1983)의 명언, “플리에와 탄듀를 거치지 않는 발레 동작은 없다”는 말도 인용.

그만큼 기본이라는 동작.


말하자면 플리에는 발레의 산소 같은 동작이다.

없으면 안 되는 건데, 당연히 있다고 생각해서 의식을 하지 않는 동작.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간 플리에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니.

턴아웃(turnout)이나 포인트(pointe)와 같은 기본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따라서 자꾸 의식을 해왔지만, 플리에는 그저 무릎을 구부리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바보.


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플리에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리에를 너무 얕게, 조금 했다는 것.

축적되는 에너지가 적을 수밖에.

플리에를 얕잡아봤기에 생긴 일. 변명의 여지없음.




김현우 선생님 말씀대로, 플리에의 목적은 도약을 위한 에너지의 축적이다.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는 것. 그런데 나는 높게, 그리고 빨리 뛰고 싶은 생각이 앞선 나머지 정작 에너지를 모으지 않았던 것.


높이 뛰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팔려 높은 지점만 생각한다면 그 점프는 열이면 열, 실패.

플리에를 깊게 할수록, 에너지를 축적할수록, 높이 도약할 수 있다.


어쩐지. 가끔 원정을 가는 비너스발레의 엄규성 선생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플리에를 깊게, 무조건 깊게! 거의 바닥에 앉는다는 생각으로 깊게 하세요.”


'톰과 제리' 중 한 장면 from YouTube. 나보다 잘 추네ㅠ [YouTube]


그렇다고 깊게 주저앉기만 해서도 안 된다.

주말마다 작품을 가르쳐주시는 호아나 선생님은 내 플리에를 보시더니 핸즈온(학생의 몸을 직접 잡고 교정해주는 것)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려가기만 하면 안 돼요. 올라가야죠.”


네? 플리에는 내려가는 거 아닌가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내게 선생님은 “목을 뽑는다는 느낌으로, 목과 얼굴을 위로 올리세요. 올라가야 내려갑니다. 내려가야 올라가고요.”




발레를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이 가장 길고 가늘어지고 높아지는 아름다움.


하반신이 무릎은 구부리며 에너지를 축적하는 동안에도, 상반신이 놀아서는 안 된다. 상반신은 다가올 점프 또는 턴과 같은 움직임을 예비하며 끝까지 늘어나고 있어야 한다. 목을 최대한 위로 뽑아 상반신을 최대로 늘려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플리에의 정석을 설명한 발레 튜토리얼. 한마디로 그냥, 어.렵.다. www.aBalletEducation.com 캡처



이렇게 플리에를 하니, 플리에만으로도 땀이 났다. 온몸이 최대한 사방으로 가늘고 길어지는 것. 중력을 거스르기 위해 중력에 가까워지면서 동시에 멀어지는 것.

이런 게 쉬울 턱이 있나.


결국 쉬운 건 하나 없다. 발레도 인생도.

제대로 된 발레 자세는 이렇다.

갈비뼈는 안으로 모으고 목을 위로 뽑고 어깨는 내리고 팔은 올리고 등은 내리고 허벅지와 골반과 무릎은 밖으로 향하되(턴아웃) 안쪽 허벅지는 모으고 배 근육은 위로 올리고(풀업) 헥헥.

그냥 서있을 때뿐 아니라 날아오르던 32회전 푸에테 턴을 돌던 계속 이래야 한다.


'발레조아' 학원에서 찍은 기본 자세. 쉬운 게 하나 없네. By SJ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기본은 플리에.

높이 뛰기 위해선 먼저 낮게 구부려야 한다.


가장 쉽다고 얕봤던 플리에는 내게 또 가르쳐줬다.


지금 바닥을 치고 있다고 해도

뛰겠다는 의지를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의지를 발산할 용기를 낸다면

그 바닥의 깊이만큼 높게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을.


낮아져야 높아진다.

발레도, 인생도.


By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