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이 5시였는데 지금은 5시 15분. 여전히 기사 첫 문장을 썼다 지우는 중이다. 부장은 10초마다 독촉 전화를 한다. “야, 그냥 넘기라고!”
스피커폰 모드를 켜지 않아도 카랑카랑 쩌렁쩌렁ㅠ
빨리 쓰고 싶은 마음은 제가 제일 간절하다고요!
얼굴에 흐르는 게 진땀인지,눈물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다.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영락없이 꾸는 악몽이다. 기자로 밥벌이를 약 20년 해왔지만 글쓰기는, 마감은 여전히 무섭다.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기자는 무대에 지각한 발레 무용수와 같다. 독자도, 관객도 자비는 베풀지 않는다.
그래도 밥벌이 20년 정도 되니 능란함은 몸에 어느 정도는 스몄다. 이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와 방식으로 취재와 기사를 쓰면서 나름의 효율 시스템을 마련했다, 고 믿고 싶다.
2010년쯤, 외교안보 분야를 처음 맡았던 때. 부끄럽지만 당시 내가 쓴 기사는 내 기사가 아니었다. 영어신문에서 파견 왔던 내가 우리말 외교안보 스트레이트 기사를 처음부터 잘 쓸 리가 만무. 낑낑대며 (& 마감시간을 넘기며ㅠ) 쓴 기사는 바이라인(byline)만 내 이름. 내용은 선배와 부장이 다 고쳐줬다.
2019년 북러 정상회담. 바위 위에서 마감을 해야했던 극한 현장이었으나, 귀국 비행기 타기 직전 짬을 내 봤던 마린스키 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덕에 행복했다. By SJ
지금도 감사한 K선배. 나를 방출하는 대신, 매일 숙제를 내줬다. 자신이 데스킹(=수정)한 기사를 연필로 10번씩 써오라는 숙제. 자판을 두드리는 정도로는 몸에 스미지 않으니,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스트레이트 기사 쓰는 방식을 체화하라는 거였다. 꼰대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내겐 이 방법이 통했다. 그렇게 약 반년 뒤, 부장의 독촉 전화 빈도 수가 줄기 시작했던 거 같다.
취미 발레도 그렇다. 마음으론 코어를 확실히 잡고 완벽한 그랑 주떼 점프를 뛰고 싶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몸은 그렇지 못하다. 그랑주떼뿐이랴. 가장 기본인 그랑 플리에조차 성에 차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열고, 내 몸에 맘을 집중하는 것. 오늘 안 된다고 해도 내일은 되리란 믿음으로 오늘에 맘을 주는 것.
하루 10번은 내 운명인 듯. 최근 발레조아 김현우 원장님께서 “하루에 그랑플리에 10번이라도 꼭 해봐요, 대신 형식적으로 대충 하지 말고 집중해서”라고 말씀하셨다. 그 뒤, 일일 10그랑플리에는 나와의 약속이 됐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매일 10번씩 기사를 베꼈던 그때.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하는 건 기적이다. 외교안보 분야를 취재하게 되면서 미친 듯이 힘도 들었지만 미친 듯이 재미있기도 했다. 외교부와 통일부 출입하는 약 7년간, 기자로선 큰 행운을 누렸다. 1, 2차 북미 정상회담 현장도 취재했고, 방북도 수 차례. 낙종을 할 때도 많았지만 단독을 쓴 날이면 세상을 다 얻은 듯 뿌듯했다.
취재원에게 한 마디라도 더 귀동냥을 하려고 하루에 점심 두 번 저녁 두 번을 먹은 적도 수 차례. 몸은 천근만근이어도 맘은 날아갈 듯했다. 중독성 강한 행복감.
북한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의 매력도 한몫했다. 주말 새벽 또는 명절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이렇게 쓰면 엄청 어려워 보이지만 그냥, 멀리까지 날아가서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미사일이라고 생각하면 됨) 발사 실험을 해대던 북한이 그립다…면 변태처럼 보이려나. 어쩌랴. 사실인 걸.
직접 찍은 김정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2019년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 현장. Copyright SJ
하지만 나만 이런 매력을 느꼈을 리 없지.
내로라하는 취재력 or 끈기, 보너스로 체력까지 갖춘 선후배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 외교안보 분야다.
통일부 내 1진 선배는 새벽 3시에도 기사를 송고했고, 출입처에서 거의 숙식을 해결했다. 당시 부장은 휴가를 가는 내게 “무기(=노트북)는 챙겨가라”라고 했고 다른 부장은 “잘 때 머리맡에 신발 놓고 자라”고 했다. C후배는 “저는 (대북)제재 덕후”라며 “제재 효율을 따지는 게 다른 어떤 것보다 재미있다”며 눈을 반짝이곤 했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도 ‘제재(sanctions)’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지만, 사실 제재란 매우 복잡다단하고도 미묘한 장치들이다. 그 차이를 행간까지 읽어내는 C후배. 그가 외교안보팀장이 된 건 편집국을 위해서도,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도, 지당한 일이었다.
But, 박수를 보내면서도 솔직히, 마음 한 켠이 씁쓸했다. 나는 아니구나. 나는 못하는구나. 나 혼자 간절하면 뭐해. 잘하고 싶다고 잘하는 건 아니니까. 나보다 잘할 수 있는 이가 확존한다면, 박수 칠 때 떠나야 한다. 고백하건대 그날 밤 귀갓길에 나는 조금…아니, 많이 울었다.
그게 약 1년 전.
지금은 이 영어 속담을 떠올린다.
Blessing in disguise 였다라고.
불행의 탈을 쓴 행운.
회사는 바보가 아니다. 어줍지 않지만 나름 팀장이 되니, 팀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보기 싫은 데도) 보인다. 내게 “사람 이야기를 풀어내는 걸 잘하니 피플팀을 맡으면서 동시에 국제 이슈도 다뤄보라”고 한 어떤 선배의 말은, 결국 맞았다. 외교안보를 깊게 다루는 걸 원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생각한다. ‘사람을 다루는 팀의 장’이라 다행이다.
모든 건 사람이 하니까. 우크라이나 전쟁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으킨 것이고, 다음엔 어떤 미사일을 쏠까 고민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사람이다. 하지만 내게 가장 큰 blessing in disguise는 이거였다.
덕업일치.
피플팀장의 분야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 말인즉슨, 발레에 대해서도 쓸 수 있다는 얘기. 인생 찐 취미에 대해 파고드는 기사를 월급을 받아가며 쓸 수 있으니 이야말로 할렐루야, 아니, 발렐루야!
그렇게 나는 만났고, 들었고, 썼다.
유서 깊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의 사상 최초 아시아계 수석무용수(에투왈, ‘별’이라는 예쁜 뜻)가 된 박세은 님부터, 세은리나님을 승급시킨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자 단장인 오렐리 뒤퐁 전 에투왈 등을 인터뷰했다.
유니버설발레단 공식 인스타 계정에서 공유해준 my 기사♡ 감사합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님도 뵐 수 있었다. 문 단장님은 인터뷰 후, 호아나발레 다이어리에 “발레를 찐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정성 들여 친필 사인까지 남겨 주셨다. 벅찬 감동으로 봤던 국립발레단의 ‘주얼스’ 리뷰는 친정인 영어신문에 쓸 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발레 꿈나무들을 만난 것도 가문의 영광. 지난해 2월엔 로잔 콩쿠르(Prix de Lausanne)에 출전해 수상까지 했던 윤서정 학생을, 올해 2월엔 파이널리스트까지 이름을 올린 최연서 양, 이승민 군을 인터뷰했다. 이들이 내게 들려준 말은 나를 기자로서 뿐 아니라 취미발레인으로서도 성장시켜줬다. 인터뷰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음 기회에 소화할 예정.
감사히도 이승민 학생이 인스타에 공유해준 기사♡
내 보물 top 10 중 단연 수위에 드는, 세은리나님의 토슈즈♡ By SJ
물론 인터뷰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질 리는 만무함. 인터뷰를 하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 및 연락을 수시로 해야 하는 수고는 당연히 들어간다. 그럼에도 그 과정을 즐긴다면 그건 수고가 아니다. 기쁨이다.
한국 매체와는 직접 인터뷰를 한 적이 없는 뒤퐁 단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최근 기사를 죄다 검색하고, 그를 잘 아는 무용 평론가를 수 차례 사전 취재차 귀찮게 했으며 무엇보다 그의 영상을 가능한 많이 찾아봤다. 그렇게 팬심을 꾹꾹 눌러 담은 인터뷰 질문지를 보내고, 떨리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건만, 1주일이 지나도록 묵묵부답. 포기할 찰나, 발레 클래스를 들어가려는데 비서에게 하겠다고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기쁨의 비명.
울면서 귀가하던 내게 말해주고 싶다.
전화위복이라고. 더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런 거라고. 어떤 행운은, 행복은, 불행의 탈을 쓰고 찾아온다고. 모든 행운이 그런 건 아니라는 게 함정이지만.
지난달 말 코리아중앙데일리에 쓴 국립발레단 '주얼스' 리뷰 캡처.
디지털 시대라지만. 여전히 종이신문도 좋다.By SJ
간절히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 가슴 아팠던 경험은 사실, 세상에 차고 넘친다.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의 간극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것은 때로 인생을 가르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내가 더 빛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나가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인 송정빈 무용수가 지난해 인터뷰에서 해줬던 아래 말을 되새겨본다.
“자신이 무용수로서 한계를 느낄 때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 질문을 하기 전 나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 그러나 송정빈 솔리스트는 하해와 같은 마음의 소유자. 아래와 같은 현답을 내놓았다.
“무용수로서 저는 최선은 항상 다하지만 한계점은 알고 있어요.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걸 잘하자’고 생각해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저는 캐릭터 연구나, 연기도 너무 재미있거든요. 제가 수석처럼 테크닉이 아주 특출나진 않지만 저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최대치로 스스로를 보여드리기에 후회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