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보"라

브런치 시즌2 by SJ 발라레 인생(15) feat. "거어어우우울!"

by Sujiney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발레 선생님들은 말씀하신다. 너 자신을 보라.


알아야 보이고, 보여야 안다. 발레에선 특히나.

발레 연습실의 한쪽 벽면이 통째로 거울인 까닭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고? 알아야 고칠 수 있으므로. 고쳐야 나아지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발레 꿈나무들의 올림픽 격인 로잔 콩쿠르의 올해 파이널리스트, 이승민 군을 지난 2월 인터뷰했었다. 그가 들려준 수많은 금과옥조 중 매번 클래스에서 떠오르는 말이 있다. 안 되는 동작이 있을 땐 어떻게 극복을 하느냐는 우문에 들려준 현답. 승민 군은 선화예고 재학 중인 전도가 very 유망한 10대 무용수다.


승민리노의 멋진 시저 점프. 앞으로도 쭉 응원합니다! 기사는 여기에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47632


“저는 극복을 ‘한다’기 보다, 극복을 ‘당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도 안 되는 동작도 있고, 거울도 보기 싫을 때도 있거든요. 안 되면 될 때까지 1000번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해요. 집에 가서도 머릿속으로 계속 정리를 하고요. 다음날 또 안 되면 또 반복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되어 있더라고요.”


“극복을 ‘당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가히 돈오점수이자 유레카의 순간. 그렇다고 승민리노의 말을 “연습을 계속하면 만사형통”이라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의 말 중 또 다른 뼈를 때리는 말이 있었으니.


“안 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를 찾아서 연습을 (제대로) 해야 해요.”


이 말은 역시 올해 로잔 파이널리스트 최연서 양도 인터뷰에서 들려준 말.


결국, 연습을 1000번 하되

제대로 해야한다는 것.


당연한 말 아니냐고?

물론.

But 안 되는 게 왜 안 되는지를 아는 것이 핵심 오브 더 핵심이다.

알아야 고칠 수 있으니까.

알기 위해선 봐야 한다.

내 몸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무엇으로? 거울로.


드가(Degas)의 발레 무용수 그림 중 하나. 연습 후엔 이렇게 지친다. by E. Degas




한때, 열심히=잘 이라고 생각했다.


예전 학원에선 창작 작품을 주고 무조건 20번 30번씩 연습을 했다. 모르면 물어보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지만 여기엔 큰 구멍이 있었음을 이젠 느낀다.


내가 뭘 모르는지를,

때론 모른다는 사실 그 자체도,

모를 때가 많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러나 그땐 무조건 그냥 연습만 했다. 턴도 스트뉴 턴과 셰네 턴 등 다양한 종류가 있음에도 불구, 그냥 무조건 빙글빙글 돌았다. 흉내를 열심히 낸 셈. 나름 진짜 열심히 했는데, 외려 그게 몸에 잘못 배어들었다. “Unlearn” 즉 배웠던 것을 빼내는 작업을 하고는 있으나 쉽지 않다. 차라리 백지였으면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발레조아 오윤주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헛된 시간이란 없어요. 열심히 했다면, 그때로선 최선을 다한 거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된다는 말씀인데, 내겐 이 말이 다정한 구원이었다. 지난 수년의 허송세월이 그래도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것, 이제라도 제대로 된 발레를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보는 건 중요하다. 발레라는 무용 자체가 보여지기 위한 움직임이고, 제대로 봐야(스팟 등) 출 수 있는 엄격한 춤이다. 이번엔 그중에서도 거울을 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적고 싶었다. 선생님들의 아래 말씀들을 복기하면서.


발레조아 김현우 원장님이 센터 워크, 특히 왈츠 턴 동작에서 제일 많이 하시는 말씀 중 하나.

“거울 보세요. 거울! 거울! (그래도 안 보면) 거어어어우우우울!”

호아나발레 호아나 선생님께 어제도 들은 말씀.

“시선! 시선! 갈 방향을 보세요!”

비너스발레 엄규성 원장님도 턴 돌 때 자주 하시는 말씀.

“눈 뜨세요, 눈!”


턴을 돌기 전은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이다. 훼떼 32회전을 할 것도 아니고 앙디올(순방향) 싱글 턴을 돌 따름인데도 표정은 전장에 나가는 이순신 장군처럼 비장해진다. 그러다 도는 순간엔, 많이들 눈을 질끈 감는다. 아마도 무서워서가 아닐지. 이 대목이 발레 선생님들에겐 안타까움의 절규를 부르짖는 순간이 되는 것.


역시 드가의 발레 무용수 그림 중 하나. 거울은 클래스에서 중요한 요소다. by E. Degas


최근 모 유명 학원에서 다른 이들의 동의 없이 영상을 촬영해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동영상 플랫폼에 올렸다가 큰 문제가 됐다. 많은 곳에서 영상 촬영을 금지한다는 공지를 새롭게 냈다. 예전에 다니던 학원은 내가 작품비를 낸 작품 영상도 못 찍게 했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그러나 개인적으론 타인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영상을 찍어 복습하는 것이 보다 빠른 교정과 습득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아마 내가 타고난 몸치여서 더 그런 듯.




발레조아 학원은 서로의 동의 하에 영상을 촬영한다. 회원들 모두 점잖고 범절이 있는 분들이라, 혹 SNS에 올릴 때도 본인만 나오도록 편집을 한다. 나는 영상을 올리지 않는다. 왜? 보는 분들의 평안을 위해서. 올리지 않는 게 아니라 올리지 못한다는 말이 맞겠다.


그럼에도 촬영은 용량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꼭 하는 편.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나중에 다시 보는 것은 크나큰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무릎을 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 왜 자꾸 무릎을 펴라고 했는지를 깨닫는다. 영상 속 내 무릎은 정확히 구부러져 있다. 나는 어깨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상을 보면 승모근이 거의 승천 수준이다. 나는 코어에 힘을 줬다고 철석같이 믿었건만 내 코어는 흐물흐물 말랑말랑 흐느적흐느적.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나은 게 이 모양ㅠ 턴아웃은 못하고 어깨는 잔뜩 힘ㅠ 그래도, 나아질거야! by SJ


이번 달부터 배우는 꿈의 작품, 에스메랄다.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감히 이걸 언젠가는 해볼 수 있을까 꿈만 꾸었었는데, 호아나 선생님께서 크나큰 결심을 하시고 이 작품을 선정하셨다. 탬버린을 들어본 건 국민, 아니,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의 적확한 티칭과, 또 훌륭한 ㅅㅇ 발메님과 함께 배우다보니, 어찌어찌 조금씩 되는 듯했다.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러나, 역시 방심은 금물이다.


아래와 같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수민 양의 올해 로잔 콩쿠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w6TfVTIl34


두 번째 클래스 이후, 호아나 선생님께서 내리신 특단의 조치. 자신이 하는 것을 직접 찍어서 리뷰해보라는 것. 그날까지 배운 동작을 음악과 함께 찍었다. 귀가 버스에선 차마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영상일 수 있기에 집에 가서 플레이해본 소감은. 음. 오 마이 갓. 뭉크의 ‘절규’가 떠오르는 시츄에이션이었으니.

온갖 용기를 쥐어짜 내어 캡처본을 하나 붙여본다. 거울에 이모지는…여러분의 인권을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우 원장님의 “발레는 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즐기면서, 대신 최선을 다해서 배우면 된다”는 말씀을 되새긴다. 매달 진행하는 두두모자에서의 시모임의 모토 사진을 조심스레 투척하며, 이번 주도 마무리!


'아무거나 시모임' @두두모자. by 부니 님 & 랭보(aka 두두)님



by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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