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눈 아닌 가슴으로”

83번째 브런치 by SJ 발라레 인생(21)

by Sujiney

“머리로 보지 마. 세상은 가슴으로 봐. 신(神)을 이해하고 싶으면 말이지.”


누구나 있지 않을까, 재발견 인생작.

처음 접했을 땐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인생의 어느 골짜기에서 다시 만나 마음을 훔치는 영화/소설/공연s. 내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그랬다.

무려 10년 전인 2012년, 개봉관에서 봤을 땐 솔직히 여러 번 졸았다. 주연인 줄리아 로버츠가 먹는 파스타가 참 맛있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모 OTT 플랫폼 무료 체험 기간에서 다시 이 영화를 만난 게 몇 년 전. 위의 대사가 가슴을 저미는 순간, 바로 정기 결제.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주인공인 미국인 작가, 리즈 길버트에게 발리의 한 영험한 노인 Ketut이 해주는 지혜의 말이다. 아래의 그림을 선물로 주면서, 계속 이어가는 말은 이랬다.


Smile with a liver.jpg 'Eat Pray Love' 중 나오는 그림. [Wikipedia Common]


“땅에 다리를 단단히 붙이고 있어야 해. 다리가 4개인 것처럼 말이야. 그래야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어. 힘들 때일수록 웃어야 해. 그냥 얼굴로 웃는 거 말고. 마음으로 웃어. 그럼 좋은 에너지가 널 찾아와서 더러운 에너지를 씻어줄 거야. 간(肝)으로도 웃어야 해.”


간(肝)? 간으로도 웃으라니?!


결국 형식적으로만 웃지 말고 온몸과 마음을 다해서 웃으라는 말 아닐지. 사실 사회생활이라는 건 가짜 웃음을 짓는 법을 체득하는 일이니까. 코로나 마스크 시대엔 심지어 입은 꿈쩍 않고 눈만 웃어도 되지 않나. 하지만 그렇게 웃는 건 웃는 게 아닌 거다. 온 마음과 몸을 다해서 웃어야 한다는 것, 뱃속에 꼭꼭 숨은 간까지도 웃을 수 있도록.


웃음뿐이랴. 커툿의 말은 보는 행위에까지 이어진다. 머리에 달린 눈동자로만 세상을 보지 말고, 마음으로 심장으로 가슴으로 보라는 말. 이 말을 최근 발레 클래스에서 연달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연속 두 번. 모두 다른 선생님들.


“어깨는 내리고, 눈 말고 가슴으로 보세요” by 호아나발레 박현경 선생님

“눈으로 보려고 하지 마세요. 가슴으로 바라보세요.” by BB발레 강다영 선생님.


발레 선생님들은 역시나, 명언 메이커들이시다.




정작 선생님들은 “발레의 ㅂ자도 모르는 당신에게 인생을 가르쳐주겠다”는 각오로 하신 말씀이 네버 에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호아나 선생님은 코어 근육은 잡고 싶은데 낑낑대다 자꾸 승모근만 후지산이 되어가는 내게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

다영쌤은 예쁜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끙끙대는 내게 어떻게 하면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실까 하다가, 문득 건네신 말씀이었으니. 요는 이거였다.


결국 눈만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보라는 것. 발레도, 인생도.


ballet in tandem1.jpg 발레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영화 '나란히 발레(Ballet in Tandem)' 중.


커툿은 가슴으로도 세상을 바라보면 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신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지금은 2022년 세밑. 바라는 건, 인생의 덧없음에서 작지만 확실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일명 소확행이라는 것도 사실은 큰 욕심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어서, 잡으려고 할수록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 행복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어버리면, 부침과 굴곡은 없지만 쓸쓸하고 지루하다.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만들 결단과 실행을 최근, 했다. 2018년 빠진 인생의 구렁텅이에서 만 5년을 허우적대다 발을 빼낼 용기를 겨우, 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약 100번 정도 보고, 발레 클래스를 1년 동안 약 400회 하며 몸과 마음을 비우고, 이제야 겨우.


옳은 결정이었지만 쓸쓸했다. 사랑이라는 걸,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젠 믿지 않는다,라고 적는 것이 쓸쓸하다는 걸 알기에. 사람에 대한 기대를 놓으니, 마음은 편하다.

직장에서 눈에 불을 켜고 돌진하는 상사 및 경쟁자들을 보면 측은지심. 자기 회사도 아닌데 뭘 저렇게까지.

온갖 SNS에서 단란한 가정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힘든 순간이 100이고 저런 순간은 워낙 특별하니 올리는 거 아닌가,라는 심드렁한 마음.

이 글을 쓰는 카페에서 앞뒤옆 커플이 ‘방 잡아 키스’를 해도 그것도 길어야 2년이라는 been-there-done-that, 나도 다 해봤다, 는 지긋지긋한 마음.


eat_pray_love_ver3.jpg 벌써 10년 전(2022년)에 나온 영화라니.


하지만 안다. 지금 산뜻한 외로움은 비겁하다는 걸. Charlene이라는 옛날 가수가 부른 ‘I’ve Never Been To Me’라는 노래 가사처럼(https://www.youtube.com/watch?v=f2-LqCU6Eaw).


이 노래의 화자는 혼자 온갖 화려한 삶과 사랑을 즐긴 여성인데, 육아의 고통과 남편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여성에게 “나는 네가 부럽다”라고 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결국 나 자신만의 행복이 아닌, 남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니까.


그래서, 슬프다. 원인은 어찌 되었건 지금 나는 외로운 산뜻함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말도 있다.

옳은 결정을 내리고 슬플 수 있어, 괜찮아.

It’s okay to be sad after making the right decision.


it's okay to be sad after making the right decision.jpg from Google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Ketut 말고 또 다른 멘토로 등장하는 Richard는 리즈(줄리아 로버츠)에게 이렇게 말한다.

“Believe in love again.”

사랑을 다시 믿을 수 있을까.


2022년 12월 31일의 답은 “No”이지만, 2023년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욕심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만다.


어찌 되었건 중요한 것.

혼자이건 함께이건,

눈이 아닌 가슴으로 사람을 보고

입이 아닌 온몸으로 웃자.

인생이 아무리 허할지라도.

마음이 허할 땐 발레 바를 잡고 몸을 다스리면 된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2023년 새해가 다정하기를.


By Sujiney


[1] 아래 원문을 살짝 의역했다

. “Keep grounded, so it’s like you have four legs. That way, you can stay in this world. Also, no looking at world through your head. Look through your heart, instead. That way, you will know God. Smile with face, smile with mind, and good energy will come and clean away dirty energy. Even smile in your liver.” (Ketut 은 살짝 broken English를 구사한다. 뭐 어때. 말만 통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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