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믿는다는 어려움

발라레 인생(39) 101번째 브런치 by Sujiney

by Sujiney

나도 설명 못하는 나를, 남이 설명해 줄 때가 있다. 가령 발레 클래스에서 나의 앗쌍블레는 왜 어중간한지, 주떼 앙투르낭은 왜 엉거주춤한 지를 선생님이 설명해 주실 때. 사실, 발레 클래스에선 거의 모든 순간이 그러하다. 그 과정의 절망을 희망으로 치환하며 즐겁게 꾸준히 계속하는 게 열쇠다. 예상하지 못한 유레카의 순간은 최은영 작가의 신간을 읽으며 왔다. 내가 이해 못 했던 나의 행동 중 하나는, 왜 굳이 뼛속까지 네이티브 코리안 스피커인 내가, 영어로 첫 책을 썼는가에 대한 답이었다.

답을 찾는 걸 포기했다는 것도 까먹었을 즈음인 지난주, 최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19쪽을 읽으며 나는 멈칫했다. 아, 이래서였구나, 싶어서.

"페이퍼백 영어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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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였다. 사실 왜 하필 영어로 썼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난 이렇게 답하곤 했다. "영어로 기사 쓰던 시절이 그리웠다"거나 "한국인 기자가 영어로 쓴 북한 책이 없으니 새 지평을 열어보고 싶다"거나 "세계의 독자를 향해 북한 파워 여성의 참모습을 전하고 싶다" 등등.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의 파편들이다. 핵심은 이거였다. 나는 두려웠다. 한국어로 북한 책을 쓴다는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 북한이냐고? 천만에. 오랜 기간 취재하고 현장에서 봤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최선희 외무상이라면 이 책을 외려 달갑게 여겼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들에 대한 칭찬은 별로 없지만, 적어도 북한 여성 엘리트에 대해 관음증적 시선과 특정 정치적 색채의 렌즈 역시, 없으니까.

두려웠던 건 나와 같은 한국인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악플러들. 물론 악플은 기자들에겐 생활의 일부다. 그럼에도, 북한에 대한 기사를 쓰는 외교 안보 부서에 있으면서 나는 특정 정치색채를 가진 열혈 지지자들에게 매국노로 치부되곤 했다. 약 세 번 정도 크게 일명 '조리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기자 소개에 나오는 내 사진을 익명의 '예술가'라는 사람이 마녀처럼 그려서 커뮤니티에 올리며 '좋아요'를 수백 개 받았고, 내 개인뿐 아니라 당시 가족의 정보까지 유출해 욕설과 비방 등을 끊임없이 올렸다.

"까짓 거, 신경 안 쓰면 되지 않아?"라는 말들. 아래 같은 메일까지 오는 걸 어쩌랴. 친절한 안내 메일이다.



실제로 들어가 보니 내 이름과 사진이 욕설과 '강간' '찢다' '돌려 먹다' 등등, 부모라면 아이들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을 단어와 함께 올라온 글에 '좋아요' 수백 개. 맹자의 성선설은 틀렸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다.


지금은 생각한다. "성희롱 내용이 있으니 조치를 취하시라"는 요지로 나를 배려해 주는 것처럼 메일을 보낸 이는 사실, 확인사살을 한 것뿐이라고. 배려의 탈을 쓴 저격이었다.

이후 한참 나는 기사 쓰는 게 두려웠다. 법적 소송 가능성도 알아봤지만, 악플러 및 악메일러,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참으로 영리하다.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 IP 및 메일을 사용하기에 추적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윗분들은 몸을 사렸다. 힘들겠지만 그냥 네가 참으면 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그냥 스스로 빨간 약을 발랐다. 제일 싫었던 건, 그런 상황에 스스로를 놓게 한 나 자신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내 마음이 가벼워져 있었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류애,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는 무거운 요소가 내 마음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좋아하는 대사.

"마음이란 무거운 거야."

그러나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아픈 가벼움이었다.




밥벌이는 힘이 세다. 어찌 됐든 배는 고파지고, 통신비는 내야 하며, 전기세는 계속 오르니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른다. 시간의 이 가차 없음이 나는 고맙다. 흘러가는 시간 뒤에 숨어 살아내지는 삶을 살았다. 그 덕에 내가 좋아했던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쓴다. 그 과정이 예전엔 행복하기만 했다면 이젠 달콤 쌉싸름할 뿐.

쓴다는 것은 읽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행위다. 심지어 일기조차도. 유명 작가 존 치버(John Cheever)의 아래 말이 최고의 설명이다.
"독자 없이는 쓸 수 없다. 글쓰기란 정확히, 키스와 똑같다. 혼자 할 수 없다(I can't write without a reader. It's precisely like a kiss - you can't do it alone.)"

악플 조리돌림 이후 고백컨데 나의 기사 쓰기는 사실 많은 부분, 혼자 하는 키스였다. 그런 나를 나는 좋아하지 않았고, 믿지 못했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건, 말해 뭐 해, 발레였다.

생각해 보면 좌천당했을 때도, 이별을 당했을 때도 나는 발레 학원에 갔다. 90분 간, 선생님이 주시는 바워크와 센터워크 동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100%를 집중해야 한다. 100%를 바쳐도 잘 될까 말까 한 게 발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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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신의 몸을 가장 길게 얇게 높게 깊게 표현해 내는 이 어려운 아름다움은, 성인이 취미로 삼기엔 얄궂다.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그러면서도 계속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나아져 있다. 성인 취미 발레로는 99.999%, 프로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 없다. 프로와 취미 사이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는 게 발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한다. 언젠가 조금씩 나아진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정훈일 선생님이 파세 업 밸런스에 고전하는 우리에게 해 주신 말씀처럼. "열심히 몸을 써보세요. 계속 시도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어? 되네?' 하는 때가 옵니다."

믿는다. 선생님의 말씀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안 될 것 같아도 일단 선생님을 믿고 해 보면 될 때가 의외로 많다. 문제는 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 그래서일까. 최근, 최시몬 선생님의 이 말씀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할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말까 하잖아요. 내가 나를 안 믿으면 누가 믿겠어요. 나를 믿어주세요."

믿는 선생님이 나더러 나를 믿으라고 한다. 그럼 믿어보자.

어찌 보면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비아냥거리며 계속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을까. 내가 뭔데 그랑주떼가 되겠어. 내가 뭐라고 중급반을 듣겠어. 나는 할 수 없어, 토슈즈 클래스. 하지만, 선생님들 덕에 못 볼 꼴에서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나의 그랑주떼와 발란스를 보며, 마음을 열 용기를 슬쩍, 내본다.

나도 악플러들이 말한 것처럼 죽어 마땅한 사람은 아닐거야. 나도 어쩌면 할 수 있을지 몰라. 삶을, 세상을, 무엇보다 나 자신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몰라.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고 싶었던 옛 마음이, 발레 클래스 덕에 되살아난다. 그렇다고 내일 당장 주떼 앙트라세가 잘 뛰어질 리는 만무. 그럼에도 오늘밤도 발레 가방을 챙긴다.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되찾기 위해.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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