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불신지옥의 시시포스에게, 플리에를 권함

84번째 브런치 by Sujiney 발라레 인생(22)

by Sujiney

인간을 믿지 않는다. 믿을 게 따로 있지.

다른 인간도 나를 믿지 않을 거다.

아니지. 믿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믿겠느냐.

믿는다는 건 꽤나 다층적인 절차를 거쳐야 가능하다. 사전적 정의만 봐도 그렇다.


네이버 사전 캡처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여기다" 라니.

세상이 그리 쉬운가.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의지하며 그것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다"라니.

사랑만 변하나. 사람도 변하거늘.


세상사 다 아는 척, 잘난 척하며 이렇게 쓰고 있는 나도 그러나, 믿는 존재가 있다.

현재 발레 선생님들이다. 뼈아픈 시행착오를 겪고 인연이 닿은, 소중한 선생님들.


발레 클래스는 대략 90분. 선생님들의 열정으로 100분을 넘기기 일쑤. 그 100분 간 선생님들은 주옥같은 코멘트를 쏟아낸다. 선생님들께서 "이런 명언을 남기고 말테닷"이라고 생각하셔서가 아니다. 그냥, 발레가 인생과 맞닿아 있기에, 발레의 티칭과 코렉션, 즉 지적사항이 인생에도 울림 있게 다가오는 거겠지. 바로 기억나는 대략 몇 가지만 추리면 이런 것.


"힘들어 죽겠어요? 네, 정상입니다." (김현우 원장님)

"할만해요? 그럼 열심히 안 하고 있는 거예요. 불편한데 편하게 보이는 게 핵심이에요." (호아나선생님)

"하는 사람은 힘들어 죽겠지만 보는 사람은 편하게 해야 해요."(여름선생님)

"축을 세우세요. 아니면 모든 게 무너집니다."(모든 선생님)


발레에서만 그런가. 사는 것 역시, 불편하고 힘든 것 투성이지만 안 그런 듯 살아가야 하고, 축이 무너지면 발레의 밸런스뿐 아니라 인생의 균형도 속수무책 무너진다.


이 아름다운 포앵트 슈즈(일명 '토슈즈') 속 발은 얼마나 아플까. 아름다움은 잔인하다. 사진 Pixabay


다시, '믿음'으로 돌아가서. 지난해, 나는 연주선생님의 이 말씀에 눈물이 찔끔 나고 말았다. 감동의 눈물.


"저를 보지 마세요. 스스로를 믿어요. 믿어야 해요!"


무모하게 도전했던 작품반에서 다음 동작이 생각이 안 나는 위기의 순간. 선생님께 "저 좀 도와주세요"라는 SOS 눈빛을 간절히 보냈던 때.


음악은 흐르고, 뒤엔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분들이 줄줄이. 뭐든 해야 했다. 마음의 눈을 질끈 감고 했더니, 와우, 얼추 하긴 해냈다. "에이 내가 이걸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또는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냥 집에서 '나혼자 산다'나 볼 걸"이라고 생각했던 나.

그러나, 생각을 살짝 바꿔보자. 불신과 회의로 시간을 보내지 말고 그 시간에 쌤 말씀대로 스스로를 믿고 "할 수 있어" 또는 "틀리면 또 어때, 일단 해보자"라고 해본다면?

완벽하진 않아도 뭐라도 된다는 걸, 연주선생님과 함께한 '라일락 요정'은 내게 가르쳐줬다.


다다음 생엔 이렇게. 'The Lilac Fair variation' Jaime Lynn Witts, the Austin Chronicle


비슷한 발레 유레카의 순간은 또 있었으니. 지난달, 최시몬 선생님의 클래스였다. 페르메라는 미들 점프를 배우는데 역시나 나라는 불신의 인간의 불안한 눈빛을 읽으신 선생님이 이렇게 외쳤다.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해도 솔직히 될까 말까 하잖아요. 아 이거 될까? 안 될 거 같은데? 안 되면 창피해서 어떡해? 이런 생각을 지금처럼 갖고 하면 될 일도 안 됩니다. 일단 해봐요. 선생님이 저렇게 말하는데 일단 믿고 일단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뛰어봐요."


그렇게 뛰었건만 역시 나의 페르메는 완벽 아닌 불완벽. 그럼에도, 잊을 수 없는 페르메였다. 오늘의 불신이 내일에의 희망으로 바뀐 첫 페르메였으니까. 탁월하지 못한 자신을 전면 거울로,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마주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날부턴 내일은 나아질 거야, 오늘 일단 열심히 해보자, 이런 마음으로 페르메를 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믿는 건 여전히 어렵고 무섭다.

한때는 믿었었다. 사람도 사랑도.


마지막이라고 믿었던 사람과 사랑이 마지막이 아니었을 때,

불행을 알고도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연락해오는 지인들을 볼 때,

나 역시 남의 불행을 알고도 내가 필요할 때만 그들에게 연락할 때가

여전히 많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다시 갖는 건 아직 어렵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발레 클래스.

아직도 나를 못 믿는 내가 거울에 있지만 그런 나를 믿어주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내가 넘어질 때 흔들릴 때, 잡아 주시는 선생님들.

나를 믿으라고 나를 믿어주는 선생님들.

그래, 인생은 살만하다. 아름답진 않더라도.




최근 행간마저 되새김질하며 부러 천천히 읽은, 김영민 작가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 160쪽.


“꿈속에서 울다가 아침이 되어 깨어나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이 놓여 있을 것이다. 누군가 시킨 일이기에 자발성을 느낄 수 없는 일,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마지못해 해야 하는 일, 인생을 파멸의 구덩이로 밀어 넣지 않기 위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의미도 즐거움도 없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 아름답지 않은 일들이 우리 앞에 길게 놓여 있을 것이다. 이 길에 끝이 있기나 할까. 목표로 할 것은 이 하기 싫은 일을 해치우고 보상으로 받을 여가가 아니다. 구원은 비천하고 무의미한 노동을 즐길 만한 노동으로 만드는 데서 올 것이다.” (김영민 작가)



명저. nightmorenight 님 덕에 알게 됐다. 감사합니다.


인생은 어차피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맞다. 하지만 그 또한 또 오리라.

끝없는 시시포스의 돌덩이를 굴려야 하는 지긋지긋함. 그런데 말이다. 이왕 돌덩이를 굴려야 한다면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이왕 아름답게 굴려보면 어떨까. 아라베스크와 플리에, 앙투르낭을 섞어서.


인생의 아름다움은 주어지지 않는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다시 넘어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는 것.

아름다움이 없다며 징징대는 게 아니라, 나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것.

사는 건 고행이지만 이왕 사는 거, 죽을 수 없다면, 죽어서도 안 된다면, 작은 아름다움이라도 찾아내기로 하자. 균형을 잡고 바닥을 밀어내고 축을 세우면서 멀리 보자.


그 수행의 수단은 모두에게 다를 터.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사치에씨에겐 합기도가, 사랑하는 ㅅㅇ언니에겐 달리기가 그렇듯, 내겐 발레다.


'카모메 식당' 포스터.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겠다는 말에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뿐이에요라는 사치에 씨의 명답이 마음에 콕.

왜 발레냐고 물으신다면?

아름다우니까.


발레는 인간이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중력을 거스르고, 발끝으로 온몸을 지탱하고 돌고 뛴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믿음, 끝없는 수련이 응축된 가치가 발레엔 서려 있다.


발레가 생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판도라 상자 속 마지막 희망인 까닭. 발레 클래스에서만큼은 나도, 인생도, 믿을 수 있다.


뒤뚱뒤뚱 발끝으로 밸런스를 잡고, 배치기가 돼버리지만 글리사드 점프를 해보고, 무릎은 여전히 덜 펴지지만 그랑주떼를 열과 성을 다해 즐겁게 뛰는 것. 오늘이 탁월하지 않아도 괜찮아. 2045년쯤 되면 제대로 할 수 있겠지.


발레 클래스에선 적어도 이런 마음이 든다.

믿자, 믿어 보자꾸나.

사람을, 아름다움을, 인생을.


By Suji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