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도 이 말을 듣게 될 줄이야. 햇살이 쏟아지는 이 아름다운 스튜디오는 분명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의 차코트이거늘. 서울인 줄 알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 말은 미국 워싱턴 DC에서도, 프랑스 파리에서도, 지난주 일본 교토에서도 들었다. 발레는 결국, 춤의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즉 '공통어'이니까.
스스로와 한 약속 역시, 선생님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인 '멈추지 마세요'와 일맥상통. 발레 클래스는 되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을 것. 매일 아침의 코어 루틴은 하루도 멈추지 말 것. 발레 광복 후 출장 때문에 비행기를 12시간 탑승한 나흘을 제외하고는 어찌어찌 지켰다.
물론, 연습의 양만큼이나 질도 중요하다. 갓재범도 최근 JTBC '피크타임'에서 말했다. "무작정 연습보다 효과적인 연습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제아무리 갓재범이라고 해도 지난주 우리 학원 공연 연습 때 내 모습을 본다면 "음, 우선 100번씩 연습하고 오세요"라고 했을 것.
나처럼 운동 신경과 공간 지각 능력이 둔한 경우엔 일단 절대적인 연습량이 중요하다. 요리를 하려고 해도 재료를 얼추 갖춰진 뒤에야 매운탕을 끓일 것인가 지리로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취미발레인, 일명 취발러들이 이런 건 아니다. 처음부터 센스 있게 캐치하는 분들이 더 많다.
부럽다.
오른쪽 책은 교토 Chacott에서 득템한, '발레용어사전'. By Sujiney
기나긴 팬데믹의 터널이 끝나고, 꿈에 그리던 기내식을 먹을 수 있게 된 지금. 2월엔 도쿄, 3월엔 교토를 다녀왔다. 도쿄에 머문 닷새 동안, 차코트(Chacott)에서 들은 수업은 총 4개, NOA 댄스 스튜디오에서 들은 수업은 하나. 교토에서도 매일 미야시타 발레학원(宮下靖子バレエ学園)에서 클래스를 들었다. 한때 일드에 빠진 뒤 조금씩 일본어를 공부해 왔던 것, 참 다행이라는 생각.
물론 서울에서 새는 바가지, 도쿄에서도 교토에서도 샜다. 서울 본진 발레조아 김현우 원장님과 정혜연 선생님, 조성은 선생님, 박현경 호아나발레 선생님, 지금도 뵙고픈 연주 선생님과 여름 선생님, 최시몬 선생님, 비너스 발레 엄규성 원장님 등께서 해주신 말씀을, 미야시타 원장님도, 모리 선생님도, 간베 선생님도, 그대로 해주셨다.
연륜이 묻어나는, 미야시타 발레학원의 간판. By Sujiney
"밸런스를 잡을 때 끙~하고 누르면 안 됩니다. 축다리는 누르고 일하는 다리는 위로, 호흡도 위로 올리세요!" "남과 비교하지 말아요. 스스로만을 위해, 즐겁게 합시다." "내려올 때, 발가락과 발바닥을 다 써서 천천히 잡고 자기 힘으로 내려오세요."
모든 선생님들의 말씀은 소중하다. 세상에 나쁜 선생님은 없다. 발레라는 예술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해 빈틈을 허락하지 않으며, 조금만 방심해도 부상을 크게 입는다. 그렇기에 선생님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항상 최선을 다하신다. 적어도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한 분을 제외하곤 그러했다.
미야시타 발레학원의 로비. 학원 관계자분의 양해 구하고 찰칵♡ By Sujiney
그중에서도 미야시타 발레학원의 미야시타 야스코 원장님의 클래스는 인상적이었다. 이 학원은 1955년 설립됐다. 성인 취미 발레의 저변이 확고한 일본에선 사실 발레학원이 꽤나 많지만, 그중에도 미야시타 발레학원은 유구한 역사가 있다고 한다. 학원에 들어서면 각종 감사장과 상장 및 상패가 있다. 가기 전, 외국인도 쿠폰으로 들을 수 있는지를 문의하는 메일에도 신속하고도 친절한 답변이 왔다.
차코트에서도 그랬지만, 미야시타에서도 클래스 시작 전, 선생님께서 내게 따로 오셔서 발레는 어느 정도 배웠는지, 일본어로만 수업을 하게 되는데 괜찮은지 등을 물어봐주시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인상적인 건 클래스를 함께 듣는 회원들 역시 따스하게 인사를 건네주었다는 것. 센터워크에서 같은 조였던 분은 자신이 순서를 틀려서 헷갈리게 해서 죄송하다는 인사까지 했다. 마음이, 편했다.
미야시타 발레학원의 두 개 홀 중 작은 홀. 액자 속 인물이 원장님. By Sujiney
화룡점정은 미야시타 선생님의 이 말씀.
클래스 시작 인사였다.
"오늘도 반가워요 여러분. 다양한 분들이 모여주셨습니다. 이 1시간 15분만큼은 각자, 나만을 위한 소중한 시간이에요. 남과 비교하거나, 나는 왜 저렇게 안 되지, 이런 생각은 절대 하지 맙시다. 나에게만 집중하도록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렵지만 아름다운 발레를 하고 있는 그 즐거움을 만끽합시다."
예쁜 벚꽃. 곧 질 벚꽃. By Sujiney
미야시타 선생님만 그런 건 아니다. 서울이건 교토이건 파리 뉴욕 싱가포르 어디든, 발레 선생님들은 같은 말씀을 하신다. 어찌 보면 발레의 큰 매력은 이 일관성 아닐까. 모든 것이 덧없는 인생. 영원하리라 믿었던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변하는 관계. 내 인생은 줄곧 높은 음자리 장조일 거라 믿었건만 낮은 음자리 단조의 바닥에서 헤매고 있음을 문득 깨닫는 지금. 그래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건 구원이다.
물론 그 구원은 쉽지 않다. 너무 어려워서 외려 잔인하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변치 않는 아름다움의 링구아 프랑카가 있다는 것에,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