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민취업지원제도 직업상담사입니다

직업상담사가 된 이유

by 나로서다


직업상담사로 취업하게 된 계기


심리학과를 졸업해 석사 공부하기는 싫고, 취업은 하고 싶은데 뭐 해야 할지 몰랐다.

대학교를 함께 다닌 언니가 직업상담사로 일하고 있었다.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취업 준비를 했다.


준비하던 당시, 이력사항에 기재할 특별함이 없었다. 그저 이 직업이 미래전망이 좋았고, T.O 제법 있어 취업을 금방 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직업상담사 2급 졸업한 뒤 준비해 뒀던 자격증만으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입사지원서 작성하며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골라 2군데 기업을 작성해 제출했다.

'미열람', '열람'

연락 오는 곳이 없었다. 4년제 심리학과 + 직업상담사 2급 자격증 + 그 외 대외활동 충분할 줄 알았다.

입사지원은 했으나 아무런 결과가 없자 금방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그 언니에게 어떻게 취업을 했는지 물어봤다.

서울에 있는 '한국직업상담협회' 직업상담사 양성과정을 듣고 취업이 되었다고 했다. 그 과정을 추천받아 신청-줌 면접-합격 과정을 거쳤다. 나는 2개월 수업을 위해 캐리어 하나 들고 대구에서 서울로 향했다.


양성과정을 통해 여러 강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나도 언젠간 내가 가진 생각과 전문성으로 저 자리에서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 취업은 꼭 필수라 생각했다. 커리어를 단계로 쌓아가고 싶었다.


취업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직업상담사란 전문성이 있으며,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커리어로드가 이어지는 직업이라 생각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직업상담사로서 나의 목표를 잡았다.

'취업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상담을 해주자.' 이것이 나의 동기부여가 되는 시작점이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열정이 대단한 친구라고 수업 강의 안에서 인정을 받으며 한껏 자신감이 올라가 있었다. 그 자신감과 동기부여로 양성과정을 통해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국민취업지원제도 직업상담사 취업 후


양성과정을 통해 국민취업지원제도 사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다.

힘든 걸 알면서 시작을 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열정밖에 없었기에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 민간위탁기관에 입사했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행정업무가 70%였다. (아니, 그 이상일수도)

첫 직장이며, 처음 해보는 업무라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원래 배우는 게 느린 편이기도 했지만, 두꺼운 매뉴얼을 소화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다행히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상담 케이스를 공유해 주시고, 행정업무를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천천히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상담을 하면서 참여자가 만족할 수 있는 컨설팅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유튜브로 공부하면서 자기소개서 내용을 작성하기 위해 <경험작성>, <직무분석> 등 여러 서식지를 제작해 갔다.

1:1로 맞춤 상담을 하고 싶었고, 좋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 내 진정성으로 대면상담에 열정을 더했다.


1년 차, 공부하며 성취를 느끼고 적용하며 취업사례를 늘리고 싶었다.

2년 차, 행정업무에 시달리며 '이 일이 내 일이 맞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진로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때로는 열정 있는 참여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게 너무 즐겁고,

때로는 참여자가 건네는 커피 한잔과 감사하다는 말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만족감을 느끼고,

때로는 수당만을 수급받기 위해 나와의 눈치싸움을 하며 그 사람이 어떤 말이 진심인지 몰라 헤매기도 하고,

때로는 까다로운 참여자를 만나면 민원에 시달리고, 친절하게 웃으며 대하는 게 에너지소모가 심하고,

때로는 매뉴얼대로 필수 이행할 것들을 쳐내면서 전전긍긍하며 업무처리하는 게 힘들고,

때로는 열정 있는 동료들과 힘을 내서 동기부여받을 수 있어 감사하고,

때로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이전에 못했던 것을 해내는 나 자신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2024년 6월 더위가 시작되는 날

5월부터 이어진 야근과 외근 상담으로 내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3주 동안 감기를 앓았다.


처음에는 콧물을 훌쩍거리길래 여름 꽃가루 알레르기 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목이 걸걸해지더니 삼일쯤 되던 날 몸에서 열이 났다.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에 있는 내과 가서 주사 맞고, 오후에는 컨디션이 괜찮아져서 힘이 났다.

그래서 늦은 저녁까지 야근하다가 퇴근했다.

다음날 몸이 무거워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계속 누워있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힘을 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했다.

아프니깐 더 그 마음이 강하게 올라오면서 나는 이 일이 맞지 않다는 극단적인 결론을 냈었다.




직업상담사도 진로고민이 됩니다


오르락내리락

이 업무를 하게 되면 직업상담사로서 좋은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정말 이 일을 하면 무언가 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미래에 무언가 더 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들었다.


내가 못하던 일을 하나씩 해내가는 맛을 보고 성장을 느끼며 자신감이 생겨 열심히 했다.

많은 행정업무에 쌓인 일거리를 보고, 계속 이렇게 일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며 의심했다.


다양한 참여자를 만나 내 상담이 도움이 돼서 감사하다는 표현을 들을 때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본인 이익(수당)을 위해 의미 없는 상담을 오고 갈 때 의미를 잃어가기도 했다.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감정과 생각이 요동쳤다. 만 2년이 되어가며 다시 진로의 고민점이 되었다.

처음 고민했던 이 일의 의미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떤 대상에게 도움을 주는 일로서 자리를 잡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그 방향에 맞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다. 지금 당장 그게 뭔진 몰라도 일과 삶의 균형을 두며, 나로 설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면서도 일 마치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된다.

평일에는 늦게 마치고, 주말에는 에너지 채운다는 핑계로 누워있기를 반복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넘쳤다. 이런 나를 마주하는 게 힘들어서 일만 하고, 나의 감정을 눌러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힘들어서 유튜브로 퇴사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내가 당장 퇴사하게 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직장'에서 벗어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직장'에서 나온다면 다시 '직장'에 들어가는 이직의 반복이 되지 않을까 결론을 냈다.


뭐라도 당장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늘 하고는 싶었지만 주저했던 브런치스토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지웠다가 다시 썼다 하면 직업상담사를 처음 시작했던 마음을 다시 새길 수 있었다. 지금 나의 고민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볼지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내가 용기 있게 나서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고민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깐. 일단 뭐라도 하면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 보자는 마음을 다짐했고, 그 길에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방향을 계속 고민하고, 기록하고자 했다.

내가 또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시작해 보자.


그래서 내 진로는

내가 가진 열정과 진정성 있는 태도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아직은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애매하게 알고 있다.


완벽하게 하려는 나의 성격 탓에 시작을 주저하고 고민으로 그치는 걸 반복하며 무기력함이 커졌다. 그래서 일단 해보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깨달아보고자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안함만 갖는 것보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방향을 찾아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뭐 그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실패를 통해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성장할 수 있으니깐.



미래가 불확실한 만큼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인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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