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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Feb 15. 2022

하루 1시간 글쓰기의 시작

오늘은 am 8:17~9:17

인플루언서이자 사업가 자청님은 22전략, 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루에 2시간, 2년 동안 책읽고 글을 쓰며 사고력을 신장시키면, 판단력이 좋아져 못 이룰 일이 없게 된다, 라는 것이다.


어제 지하철에서 읽은 책쓰기 서적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님이 30년 동안 매일 1시간씩 달리거나 수영을 하고 200자 원고지 20매씩을 써 냈다고 했다.


음, 음..

그렇다는 말이지..




하루에 1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 놓고 버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물리적으로 엉덩이를 붙이고 있겠다고 마음 먹으면, 뭐 그리 못할 것도 없겠다 싶다.


그리하여, 이 프로젝트를 당분간 해 보려고 하는데, 얼마나 실행할 수 있을 런지는 모르겠다.





근 2년 동안 무엇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강의를 듣고 책을 읽었다. 소설책만 들고 파며 가끔 에세이를 읽던 내가 심리학, 뇌과학, 마케팅, 성공학, 재테크 관련 서적을 주로 읽게 된 것은 나이가 주는 삶의 무게 탓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집을 사기 전까지) 많이 초조했었구나, 라고 깨달은 것이 얼마되지 않았. 또한 책읽고 정리를 하면서 뇌가 정리되고 좀 더 효율적으로 변한 것도 사실인 듯 하다. 업무 능력의 향상이 이를 증명하니까.


다만 아쉬운 점은, 점점 자본이 우리의 일상적 영역까지 파고 들어 좌우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원래 돈은 부끄러운 것이 아닌 필수적 요소이지만, 요즈음의 세태는 조금 씁쓸하다. 사는 동네와 아파트 이름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좀 너무 하지 않은가?


미디어에서는 연일, 당신이 부자가 아니라면 게으름과 무능력 탓이니 정신차리고 최선을 다해 발버둥이라도 치라고 말한다. 전에는 시대와 사회 구조를 탓했다면, 이제 모든 것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된다. 자본을 굴려서 소득을 몇 배로 불리지 않으면 자본주의를 모르는 어리석은 중생이며, 일을 해서 버는 노동 소득을 위주로 생활하면 대책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정한 노동을 하면 어느 정도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 아니었나? 사회는 누군가의 노동이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기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고마워하고, 노동자는 일할 자리와 사회 체재를 만들어가는 그들을 인정해주면서 서로 윈윈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자들이 피해의식을 가지지 않도록 그들에게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의 터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 안전망을 잘 구축한다면, 지금처럼 모두가 혈안이 되어 콘크리트 덩이 한 채를 몇 십억에 사게 되는 비정상적 범주에 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주거 불안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면, 바꿔야 한다. 시스템을 수정하고 개혁하여,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적대시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흥분해 버렸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초조해져서 90%의 실용서 위주의 독서를 하고 아주 약간의 실행으로 집을 구입한 본인은, 돌이켜보며 다시 좋아하는 일들은 좀 더 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여러 가지를 실행해 보면서 느낀 점은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좋아해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 꾸준히 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없는 일에 인생의 긴 시간을 할애한다면, 설사 성과가 난다 해도 그리 기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은 자신이 원한 삶의 방향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다시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즐겁고 기쁘고 보람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중요시 여기는 것, 가치관 등이 쉽게 변하지 않음을 절감하며, 이제는 방황을 덜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으려 한다.


돈이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영어를 좀 더 파지 못했다. 부동산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왜? 기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능력이 안되어서 피하는 거 아니냐고 정말 처절하게 스스로를 검증했다. 그리고 2년의 고민(사실은 더 긴)에 종지부를 찍었다. 내 길이 아니라고.


경매나 영어를 붙잡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합당한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 길이 나답지 못한 길이기 때문임을 이제는 안다. 더이상은 스스로를 의심치 아니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다시 국어와 독서, 강의와 쓰기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이것은 작은 선언이다.

그냥 나답게 살겠다는 것.

결혼을 선택할 때 아무 조건도 보지 않았다고 어리석다는 말을 들었지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나는 또 그렇게 미련해 보이지만 한없이 현명한 선택을 한다.


생긴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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