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생명의 은인

절이라도 해야 할 판

by 미도리진

독서는 나에게 있어 피난처였고, 안식처였으며, 친구였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나의 병원이었다.

나에게는 그만큼 책은 절실했고, 사랑이었다.

책을 읽지 못했다면 지금쯤 어딘가의 하얀 벽으로 둘러싼 병원에서, 벽을 긁고 있을 런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신랑과 친구들에게 말했었다. 책은 나에게는 은인이다.


좀 더 멋진 비유를 하고 싶지만,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다.

정신과에 다니는 어느 브런치 작가님께서 치료를 위해 심리학 책을 쌓아놓고 보셨다고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신과에 다닐 용기도, 비용도 없고, 이력이 남으면 나중에 보험도 들지 못한다 하여 꾸역꾸역 버텼다. 내가 남자아이라면 집을 나오는 게 좀 더 수월할 거라며, 애꿎은 성별을 탓하기도 했다.


버티고 버티다가 정말로 물리적으로 숨을 못 쉬겠고, 신경이 끊어질 것 같아서, 엄마를 협박- 잠수를 타겠다고 - 하여 나는 29살 때 독립이란 것을 했다. 엄마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엄청나게 중요시하는 분이어서, 나는 그것을 계산에 넣고 협상했다. 그때는 마음이 아프다거나 혼자 남는 엄마 - 오빠는 결혼해서 분가했다 - 를 걱정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내가 먼저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내가 정신병원에 가거나 폐인이 되는 것보다는 나으니 엄마에게도 그것이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왜 책으로 도망쳤을까? 나의 도피 방식에 대해서 내 친구는 의문을 표했다. 자기는 아무리 힘들어도 책을 보지는 않는다고. 나는 왜 책을 안 보지?, 라며 역시 의아해했다.


사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들은 모방의 천재이고 나보다 5살 많은 친오빠가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빠는 사촌오빠의 영향으로 책을 좋아했다. 나의 어머니는 책을 평생 - 내가 아는 한 - 한 권도 읽지 않는 분이셨지만,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오빠가 좋아했던 사촌 오빠가 책벌레여서 오빠는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책을 많이 읽었고, 야구와 축구, 농구 시청을 즐겼고, 나중에는 컴퓨터 관련 학과를 가게 되었다.


다른 점도 있다. 사촌 오빠는 수학을 엄청 잘했는데, 나와 오빠는 수포자였다. 책도 실용서는 거의 보지 않고 90%의 소설과 10%의 에세이로 채워지는 독서를 했다. 무협지와 대하 역사 소설도 많이 봤다. 그리고 똑같이 평소에는 공부를 하지 않고 당일치기만 해서 영어와 수학을 잘 못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 오빠와 나 - 는 별로 공부를 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의 대학에 나란히 합격했다. 사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그 어떤 지원도 없이, 재수도 하지 않고 붙었다. 사실 재수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엄마가 현역으로 붙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대학이란 없다고 처음부터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둘 다 대학을 하향 지원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세상이라면 사업을 먼저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는 '책'이라는 아이 덕분에 살아남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강사라는 직업도 책을 읽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신랑도 말발로 나에게 흥미를 느낀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여자아이와는 결을 달리하는 내가 조금 흥미로웠을 거라 추측해본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 글의 소제목이 절이라도 해야 할 판, 이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책'이라는 아이와 저자 분들에게는 정말로 하루하루 고마워하며 살아가고 있고, 껴안고 입 맞추고 선물을 풍성하게 안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고맙다. 사랑한다. 감사한다. 책아.

절대 이 생을 포기 안하고 잘 살아낼게.


끝까지 살아남아서 은혜를 갚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