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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Nov 12. 2020

엄마는 나를 비난했던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위하여

어렸을 때부터 나는 큰 시련에 직면해야 했다.

엄마의 비난.

엄마의 무관용.

엄마의 편애.

엄마로부터 오는 무자유.


아이에게 자율성을 빼앗는 것은 꽤나 잔인한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세상은 그랬다.

삶은 견디고 버티어야 하는 것, 내가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시기가 올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지탱해야 할 시간.


초등학교 때는 중학생이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이 되면 나아질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대학생이 되면 벗어나자, 라면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벗어나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친구들에게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지금에 와서, 마흔 중반의 나이가 되어, 나는 생각해 본다. 엄마는 왜 그랬을까.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편과 헤어지고 두 아이를 기르는 일이, 비록 남편과 연락은 하고 약간의 생활비는 받더라도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시절에.


다른 형제들과 비교도 되었을 것이다. 가장 예뻤던 우리 엄마는 가장 잘못된 선택을 했고, 7형제 중 가장 어렵게 살았다. 그리고 그 다친 자존심의 여파로 몸이 아팠다. 늘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약한 고혈압과 당뇨 기도 있었다. 하루 세끼 - 혹은 두 끼 -, 우리의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일은 '힘들어서 못한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는 늘 나에게 말했다.

"늬가 그렇지 뭐."

"넌 왜 이렇게 밖에 못하니. 그럴 줄 알았어."


전혀 혼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꾸중했고, 꾸중해야 하는 일을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늘 억울했고, 어른들을 그다지 믿지 않게 되었다.


예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에 우리 사무실 사람들의 여론 조사를 한 일이 있다. 내가 어른들의 말을 믿고 그냥 배 안에서 기다리겠느냐, 아니면 밖이 뭔가 이상하니 위로 나가 보겠는가?,였다. 사람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그냥 얌전히 기다린다, 를 택했다. 나와 신랑- 신랑과는 나중에 집에 가이야기했다 - 만 어른들을 믿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 는 의견을 냈다.


우리는 어른들을 마냥 믿기에는 너무 세상을 겪었달까. 합리적이지 못한 일을 너무 많이 당한 눈이 슬픈 아이들이었다.


그렇다면, 엄마는 왜, 나를 끊임없이 비난했던 걸까. 그건 아마도 세상을 원망하고 엄마 자신을 믿지 않아서, 가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라면 엄마를 안고 말해 줄 텐데. "엄마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이다.


혼자가 된 것도, 우리가 부유하지 못한 것도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것일 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냥 훌훌 털고,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로 '우리'로 똘똘 뭉쳐 재밌게 살면 되는 거다.


엄마를 안고 그렇게 말했다면 엄마는 아마도 욕을 하고 외면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같은 삶의 방식을 이어갔겠지. 그래도 나는 또 엄마를 안아 줄 기회를 노릴 것이다.


엄마는 나를 비난했던 것이 아니다. 다만 게워낼 어딘가가 필요했을 뿐. 그리고 그 타겟이 '나'였을 뿐이다.


티브이에서, 혹은 살아가면서 눈이 슬픈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저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살아왔을지 뼛속 깊이 느낄 수 있기에. 지금의 평정과 웃음을 갖기 위해 그간 얼마나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해 왔는지 알기에. 그래서 나는 그들을 그냥 평안하게만은.. 볼 수가 없다.


그 사람들과 나 자신과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


배우 강하늘은 말했다. 자신의 행복의 조건은, 숨을 쉬고 살아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내고 있으니, 모두 승리자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맡으며 생각해 본다. 오늘도 포기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의 온기를 느끼면서 다짐한다.

엄마의 외로움을 몰라 주었던 나를 용서하자고.

그리고 엄마에게 못 다 해준 따뜻한 말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살자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연대, 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어리석은 자가 흘리는 눈물같은 것들이 모여 무언가를 이루어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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