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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Nov 12. 2020

늬가 내 맘을 알아?

우린 너무 다르지만 같은 것도 많다


어제저녁에도 신랑이랑 다투었다. 아니 다투었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것이 맞겠다. 시작은 미미했다.


"너, 발 각질 관리 안 할 거야?"

나는 그냥 무시했다. 아니 대답은 했다.

"어, 할게."

"티브이만 보지 말고 제발 네 관리 좀 해라. 맨날 장모님 닮아서 게으르다고 핑계 대지 마. 그냥 늬가 게으른 거야."


서서히 열이 받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구나.

신랑을 따라다니며 쓰레기를 치우고, 신랑의 잡다한 일들도 내가 많이 해주면서 살고 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월급이 많이 줄었지만, 결혼하고 내내 일도 했다. 물론 나는 많이 게으르고 정리도 못하지만, 메타인지는 높은 편이고 그런 나의 모습이 너무 싫어서 많이 노력했고, 나아졌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실천력이 떨어지는 나는 달라지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블로그에 내용을 정리하고 나의 생각을 남기는 것을 진행하면서 뇌와 마인드가 변해갔다. 회사에서 나의 업무 하는 모습과 집안의 상태를 보면서 내심 뿌듯해하던 요즈음이었다.


본인의 캐어를 늘 하고 있는 그런 나에게, 신랑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런 식의 공격을 해온다. 물론 지적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은 감정을 동반한다. 비난적 어투는 이쪽에서도 사양이다.


조금 있다가 신랑이 휴대폰이 자꾸 느려지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이 생각나서 안방으로 갔는데, 또 공격을 시작한다.


" 너, 얼굴이 그게 뭐야. 나이 50도 안 되어 가지고. 제발 관리 좀 해라."

음.. 안되겠다, 싶었다.

" 신랑 얼굴도 늘 아름다운 건 아냐.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 남자랑 여자랑 같아?"

헉. 이건 싸우자는 얘기군.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다. 난 티브이를 거의 안 보고 - M본부의 '나 혼자 산다'와 tvn의 '온앤오프'만 본다- 리모컨을 늘 쥐고 있는 것은 신랑이다. 누가 게으르다는 것인가. 늘 강의 듣고 책 보는 나인데. 대학원도 가고 싶은걸 참고 있는데.


작은 방으로 들어와 듣고 있던 강의를 마저 들었다. 강의를 이것저것 듣다가 요즘은 전략을 바꿔서 '한놈만 패는' 전략을 쓰고 있는데, 너무 좋다. 난 다시 '무시 모드'로 들어간다.


신랑과 나는 취향이 비슷한 것이 거의 없다. 나는 책과 음악을 좋아하고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술도 즐긴다. 신랑은 티브이를 좋아하고 옷에도 관심이 있고, 영화를 좋아하고 책은 보면 안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술은 소화 효소가 없어서 먹으면 링거를 부른다.


우리가 결혼할 때, 주변에서 모두 의아해했다. 우리가 닮은 것은 오직 하나. 아버지의 부재와 그에 따른 많은 상처의 동반,이었다. (그래서 나는 눈이 슬픈 사람에게 끌린다. 그 사람이 저~ 구석에 있다 하더라도 귀신같이 발견해 내는 것이다.)


나는 신랑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 자존심 때문에 - 양발을 닦고 바디로션을 바르고 비닐을 씌웠다. 그리고 1~2시간 강의를 더 듣고 씻고 잤다. 비닐은 하고 자려고 했는데 땀이 계속 나서 벗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음날 아침, 신랑은 여느 때와 같이 내 눈치를 본다. 바지 하나를 들고 와서 쓸데없이 말을 시킨다.


" 이 바지 아무래도 버려야겠지? 뒤에 다 울었어."

" 어, 어제 말했잖아."

나는 최대한 영혼 없이 대답한다.

그리고 나서 쳐다도 안 보았더니, 출근한다고 현관에서 부른다.

" 아~ 피곤하다."


아이고. 피곤하시단다. 안방으로 가서 어제 새로 배달 온 홍삼 스틱을 가져다가, 현관에 신발 신고 서 있는 그에게 준다. 마실 물도 대령한다. 그는 치열하게 쪽쪽 짜 먹고, 핸드폰으로 차에 시동을 미리 걸고 인사를 남기고 갔다.


20분 후 전화가 왔다.

"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 알지?.. 어제, 미안해."

어.. 이 사람, 미안하다는 말 진짜 안하는 사람인데..

하도 미안하다는 말을 안해서 기대도 안했다.


전화를 끊었는데, 왠지 억울함이 북받친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잊기의 대가' 아니던가. 나의 방어 기제는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발달해왔다. 30분쯤 미국 대선과 임영웅님이 나오는 티비 프로를 보며 힐링을 하고 차를 마시고 스트레칭과 명상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신랑을 사랑하고 있다. 정말 인정하기 싫은데. 그는 내가 가장 처절한 시절에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이다. 술을 못 먹고 잔소리도 심하지만 그는 눈치가 빠르고 깔끔하고 - 때로는 더럽다 - 정리정돈을 잘한다. 무엇보다.. 마음이 깊다.


우리는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간다. 잘 웃고 잘 잊어버리고 남과 잘 비교를 안하고 다. 그가 술을 조금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성질에 술까지 해도 문제겠다.


오늘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먼저 퇴근한 신랑이 고기를 볶아줄 것이다. 아니면 전화해서 뭔가를 사오라고 하겠지. 그러면 나는 다이어트의 결심을 잊고서 조금은 기꺼이 먹어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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