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머리가 작은 편이라 느꼈던 나에게 조금 과장하면 얼굴의 반이 덮이는 큰 안경을 쓰게 했다. 그 안경테는 내가 고른 것이 아니었고, 엄마가 어딘가에서 받은 것이라 기억한다.
그래도 나는 안경의 존재가 고마웠다. 잘 보이지 않던 뿌연 세상에서 나를 구해주었으니. 신랑이 나를 힘들때마다 가위눌림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니 고마워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결혼(32살 4월) 할 때까지 늘 가위를 눌리며 지냈다. 고등학교 때는 독서실에서 잠깐 엎드려서 눈을 붙여도 가위에 눌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다들 그렇게 조금씩은 가위에 눌리는 줄 알았다. 내가 좀 심한 케이스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전혀 모르는 이야기, 라는 얼굴을 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아, 나만 이렇게 사는구나.
그렇더라도 상처를 안고 살았던 자의 특권도 있다. 처절함을 아는 것.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뭔가 찐한 집중력과 감정을 얻을 수 있다. '감'도 좋아진다. 인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추구하게 된다. 가위눌림과 상처는 나에게 있어 신랑이라는 안경으로 극복한 시력저하다.
언제나 인생은 그렇다. 나쁘기만 한 것은 없는 것이다. 이제, 본캐에 이은 부캐를 키우려 하는 나는 오늘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간다. 어머니를 점점 이해하게 되는 나는, 이제야 조금씩 철이 드는 것 같다.
2.
렌즈를 처음 끼우게 된 것은 대학교 때.
안경을 쓰고 있는 여학생과 미팅을 하고 싶어 하는 남학생을 찾을 수는 없었던 시기였다. 무엇보다, 안경이 그렇게나 촌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때의 나는 눈이 참 예뻤다. 안경을 고수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렌즈를 끼울 수 있는 시기는 대략 10년 정도.
나는 32살 때 결혼을 하고 35살쯤 렌즈와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 줄곧 안경과 함께 사이좋게 지내왔다. 안경의 가장 좋은 점은 눈의 주름이나 다크 써클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가장 나쁜 점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눈가의 주름을 보고 깜.짝.놀.랐.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매일 밤 마스크팩을 15~20분쯤 붙이고 있다. (현재 보름 정도 되었다.) 한없이 게으른 나의 조금 늦은 각성이 더 이상의 노화를 늦추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