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칭의 시대, 촛불의 응답
그날, 뉴스 화면에 한 단어가 선명하게 들렸다. ‘참칭!’ 그동안 몇 번은 스쳐 지나갔던 단어일텐데 이번만큼 호기심이 마음을 깊이 파고든 적은 없었다. 사전을 펼쳤더니 '분수에 넘치게 스스로를 임금이라 칭함'이었다.
한 줄에 불과한 설명이었지만, 그 문장은 현실의 그림자처럼, 어떤 장면에 정확히 겹쳐졌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였다. 그 권력을 실험이라도 하듯, 한 번쯤 써보고 싶은 장난감쯤으로 여겼던 것일까. 불장난 같은 결단 하나가 나라 전체를 휘청이게 하고, 그 실험의 무게는 고스란히 국민의 삶에 내려앉았다.
나는 두문불출했다. 몸은 방 안에 있었지만, 마음은 뉴스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국민의 주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험 앞에서 나는 기가 막혔고, 어떤 할 말도, 할 수 있는 일도 떠오르지 않았다.
때마침, 책장에 서있던 『소년이 온다』가 눈에 띄었다. 한강 작가가 그려낸 광주의 기억이다. 진압과 침묵, 상처와 증언의 언어들이 얽힌 문장들을 따라가던 내 마음은 몇 번이나 멈춰야 했었다. 이제 막 시작된 현재의 풍경과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는 사실에 서늘함을 느꼈다.
곳곳 거리는 다시 찬바람을 맞으며 걷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광화문, 여의도, 전국의 광장 곳곳에서 생계를 뒤로 한 촛불이 다시 모여들며 타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 가지 못했지만, 마음만큼은 분명 그곳을 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 다 끝났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시작이라는 듯 촛불을 횃불처럼 들었다. 분노를 넘은 책임감으로, 그리고 나라에 대한 걱정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사랑이 없다면, 이토록 깊이 실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분노는, 간절함의 다른 얼굴이었다. 그러나 권력들은 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의 목소리보다 자기 자리를 더 걱정했고, 질문에 대답하기보다 눈을 피했다.
연말특수를 기다리던 식당 주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는다. “공무원들이 송년회를 전면 취소했대요.”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었다며 텅 빈 식탁을 바라보던 그 눈동자가 화면을 스쳐갔다. 그 속에는 생계가 아닌, 생존의 두려움이 공포처럼 얼룩져 보였다.
나는 묻는다. 이 혼돈의 뒷면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 것일까. 정치에 무관심했던 우리의 방관? 당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을 기준 삼았어야 할 우리의 침묵? ‘나만 괜찮으면’ 그만이었던 안온한 이기심? 무언가를 비판하는 일은 쉬웠지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은 늘 어렵다. 어쩌면 이 질문들이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아서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잃지 않고 싶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이 나라엔 촛불을 들 줄 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난세영웅’이라는 말이 있다. 시대가 어지러울 때,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사람을 말한다.
지금, 이 그 말은 화려한 무대 위의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추위 속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침묵으로 연대하는 보통의 시민들에게 더 잘 어울린다. 나는 기대한다. 우리는 이미 단단해지고 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쉽게 잊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그렇다. 나라를 잃지 않기 위해, 서로를 지키기 위해 다시 촛불을 들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마음들을 믿는다.
광장에 가지 못한 마음도, 광장이다. 말없이 켜진 마음 하나하나가 광장에 함께 하였으리라. 그것도 누군가의 용기가 되고, 또 다른 희망이 되리라. 우리는 결국, 힘든 만큼 더 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희망은 언제나 바닥을 딛었을 때 하늘 높이 우러러 보이는 곳이 둥실 뜨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