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앨범
한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만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아이의 반짝이는 말과 행동이 사람들 눈에는 “4차원”처럼 통통 튀어 보였지만, 엄마의 눈에는 말 안 듣고 속을 썩이는, 그래서 미워지기까지 하는 존재로 비쳤나 보다.
엄마는 말했다.
“저는 알아서 척척 공부했어요. 지금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죠.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러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지친 얼굴로 집에 돌아와 아이를 마주하면, 왜 그렇게 밉고 버거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조금은 의아해서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엄마는 어떤 때 일이 잘 되세요?”
“마음이 편할 때요.”
“그렇다면, 아이는 지금 마음이 편해 보이나요?”
잠시 머뭇거리던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아이의 모든 것에 간섭하거든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아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요?”
엄마는 잦아든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편안함이요.”
그 말과 함께,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신의 모습을 처음 똑바로 마주한 듯, 엄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는… 제가 편안할 때 일이 잘 된다고 말해놓고는 아이를 너무 불편하게 만들었어요.”
그 말에는 미안함이 섞여 있었고, 조금은 억울함도 담겨 있었다. 내 안의 불편함을 아이에게 쏟아내고, 그게 사랑이라 착각하며 정당화했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그 모든 것이 갑자기 하나로 모여 엄마의 눈에 눈물로 모여들었던 건 아닐까 한다.
문득, ‘역지사지’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태도’라고 여긴다. 그리고 실은, 그 말이 가장 먼저 닿아야 할 곳은 가족, 그 중에서도 내 아이가 아닐까.
가족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말하고, 내 기준으로 평가하고, 내 기대에 맞추어 행동하길 바라는 순간 우리는 그 아이를 ‘아이’가 아니라 ‘나를 위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부모는 자식 위에서 이리저리 재단하면 분재로 키우려 한다.
어쩌면 거의 모든 관계의 갈등은 이 ‘자리’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와 너의 마음 자리를 바꾸어 보는 것, 그게 역지사지다.
오늘 그 엄마의 눈물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자신의 불안을 처음으로 내려놓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걸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까. 엄마의 마음이 아이의 마음을 덮어버린 모습을 보았을 때 어쩌면 옛날의 자기 모습이 겹쳐왔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키워드는 ‘역지사지’였다. 그 말 하나를 나는 마음 앨범 깊숙한 곳에 조용히 꽂아 두고 싶다. 어떤 말보다 오래도록 꺼내어 보게 될 것 같다. 나 또한 아이의 입장보다는 나의 마음과 생각의 입장에서 아이를 다그치는 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바꾸어 앉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