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풍경이던 날

by 별빛수

사람이 풍경이던 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여의도에 있는 조그만 오피스텔로 향했다. 코치클럽 송년회 같은 모임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듬성듬성 섞여 있어 약간은 긴장했지만, 결국 그 밤은 내게 서울에서의 첫 송년이었다. 그래서인지, 돌아오는 길에선 노곤함 속에서도 어딘가 꿈결 같았다.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설명에 청산유수였다. 어떤 이는 유창하게, 어떤 이는 조심스럽게, 각자 자신을 묘사했고 대체로 “이런 모임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앞으로 이러이러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되곤 했다. 나는 다짐했다. '자기 자신을 길게 설명하지 말자.' 마치 타산지석처럼, 내 안에서 조용히 받아 적었다.


모임의 간식은 각자가 준비해온 것이었다. 나는 빈손으로 갔다. 그런데 부산에서 오려다 기차를 놓친 분은 미안하다며 피자를 배달로 보냈고, 부모님 모두 입원 중이라는 한 분은 밝은 웃음으로 강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잠시 머물다 떠났다. 지방에서 2시간을 달려온 분은 결국 2차 장소에서 우리를 만나기도 했다.


그 모두의 정성과 발걸음이 작은 방 안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예전처럼 기대에 들뜨지도 않았고 신이 나지도 않았다. 무덤덤했다. 마치 배경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설렘이 사라지는 나이란, 이런 것일까. 새로운 계획 같은 것도 부질없게 느껴졌고 그저 조용히 듣는 쪽을 선택했다.


그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태도는 앞으로의 삶을 경이롭게 마주하려는 아름다운 자세였다. 그러나 나는, 마치 오래도록 마이너리티의 심정으로 살아온 사람처럼 그 설렘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내 안에 작은 변화가 움찔했다. ‘사람’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일이 아니라 사람이 내 삶의 온도를 바꾸는 것이었다. 사람 좋은 모임을 알게 된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빛나는 건 모임의 주제가 아니라 사람이 풍경이 되는 찰나들이다.


그리고 조금은 욕심을 내보고 싶어졌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를 설레게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매력적인 사람을 문득 만나고 싶어졌다. 참 오랜만이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느닷없이 밤을 물들인 건. 그건 어쩌면, 내 안의 매력이 고갈되었음을 나 스스로 감지한 징후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 포대기로 감싸듯 내 마음을 안아주기로 했다. 기대지 못하는 나도, 기대할 줄 아는 나도, 모두 다 내 편으로 끌어안기로 한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그 말이 오늘 밤,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말이다.


이전 14화나무는 밖으로, 사람은 안으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