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내가 살았던 부산, 명지. 그곳을 다시 찾았다. 오랜만에 들른 1인 목간. 무언가가 나를 덮고 있던 피로의 층을 조용히 벗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처음은 20분 정도의 반신욕이었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자 서서히 마음까지 스르륵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짧은 물속의 정적이 길게 울리던 긴장의 실타래를 풀어낸 듯했다.
이윽고 세신사님이 들어왔다. 온몸을 부드럽게, 때로는 단단하게 닦아주고 이어서 스포츠 마사지를 해주었다. 두 발로 내 몸을 꾹꾹 눌러주는 기술은 몇몇 지점에서는 아프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고통은 시원함과 감동 사이의 어딘가에서 나를 건드렸다.
괄사 마사지라고 불리는 순서로 넘어가면서, 얼굴을 부드럽게 긁어주는데, 이 낯선 감촉은 내게 거의 신세계에 가까웠다. 무언가가 씻겨나가고, 다듬어지고, 정성껏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1시간 40분, 계약된 시간이 끝났다는 알람이 울렸지만 그분은 멈추지 않았다. “괜찮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 뒤에 그의 손과 발은 오히려 더 섬세하게 움직였다. 무려 2시간. 쉼 없이.
내가 그토록 아낌없이 받는다는 느낌을 언제 마지막으로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그분의 얼굴을 보았다. 나보다 조금은 어려 보였지만 그가 내게 준 시간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그늘 같았고, ‘큰 바위 얼굴’ 같은 단단한 평온이 담겨 있었다.
129,000원. 그 이상이었다. 값을 치렀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나는 많은 것을 받았다. 진심을 담은 손길 하나에 삶을 보는 시야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팁을 얹고 싶은 마음, 그건 단순한 고마움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어느 작가가 그런 말을 했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언제 누구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나는 그 말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나도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따뜻했던 순간이 있었기를, 누군가의 삶 한 장면 속에서 감동의 인간으로 기억되었기를, 잠시 그러나 간절히 ‘주문’을 걸어보았다.
세상에는, 참 아까운 사람들이 있다. 사라지기 아까운 사람,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을 천사라고 부른다. 오늘, 드디어 한 명의 천사를 만났다. 그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지만, 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쌌다. 감동은 조용했고, 뭉클함은 오래 남았다.
문득, 마음 한구석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너도 천사 좋아하지? 그럼, 네가 먼저 그렇게 되어보는 건 어때?”
그래,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아낌없이 다가가보자. 내 존재가 감동이 되는 순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을 수 있는 순간, 그 상상을 미리 버킷리스트 한 줄에 적어넣는다.
“당신이 있어, 오늘은 세상이 살 만했습니다. 덕분에 괜찮은 하루였네요.”
그 말을 듣는 나를, 먼 훗날의 누군가가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생각만으로도 이 밤, 천국의 맛으로 내 마음 한편이 풍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