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있는 내과에 국민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걸어서 20분 남짓 되는 거리였지만, 칼바람이 뺨을 때리고 목을 파고드는 겨울날이었기에 그 길은 더 멀고 낯설게 느껴졌다.
내과에 대한 평은 나쁘지 않았다. 지인의 말로는 “원장님이 설명을 참 자세히, 오래 해주시는 좋은 분”이라는 정보였다. ‘좋은 의사’라는 말은 요즘 시대에선 일종의 기대치처럼 자리 잡은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병원 문을 들어서며, 무언의 기대감이 내 안에도 어느새 스며들고 있었다. 부부가 함께 검진을 받았다. 나는 의사에게 질문을 하려 했고, 남편도 궁금한 것이 있다며 질문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짧고 명확했다.
“질문은 짧게 해주세요. 뒤에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이어진 또 한 번의 당부.
“아주 짧게 해 주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순간, 찬바람보다 더 시린 공기가 남편 마음과 내 안에 스며드는 것 느꼈다. 풍문으로 들은 ‘친절한 의사’와 지금 이 순간 ‘현실의 의사’ 사이에서 작은 혼란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그 말은 거절도 무례도 아니었다. 단지, 시간에 쫓기고 있는 시스템 안의 한 마디일 뿐이었다. 홀에 앉아 있는 다음 사람들의 입장을 떠올리자 불쾌감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때 문득 떠오른 말이 있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면, 우산 장수는 웃고, 소금 장수는 운다.”
인생의 대부분은 이렇듯 입장의 차이로부터 생겨난다. 내가 서 있는 자리와 타인이 서 있는 자리는 늘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역지사지’라는 네 글자가 구원투수마냥 등장하여 마음의 중심을 살며시 잡아준다. 어떤 말이든, 어떤 상황이든 잠시 그 사람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시선 하나만 있어도 마음은 균형을 되찾는다. 의사의 말투는 다정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한 입장을 이해하려는 순간 내 마음엔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날 병원에서 ‘만성질환 관리수첩’이라는 작은 노트를 하나 받았다. 혈압을 매일 체크해 한 달 뒤 다시 보자는 것이었다. 예전, 경희대 의료원에서 고혈압 임상대상자로 선정되어 몇 달간 매일 약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복용을 멈췄고, 지금은 관찰을 통해 스스로의 몸을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지 않았다. 대신 오랜 시간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그 말이 나에겐 참 좋았다. 내 몸을 믿어보는 시간, 자기 돌봄의 리듬을 되찾는 시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노트를 펼치니, 공복혈당과 식후혈당을 기록하는 칸도 있었다. 혈당계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오늘 병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역지사지는 때로 나의 감정을 다독이고, 때로는 타인을 향한 이해의 문을 열어준다. 내가 중심을 잡는 그 순간부터, 내 안엔 불만이 아니라 작은 선함의 언어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