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처음엔 자동차가 궤도를 벗어나 숲으로 내달리는 꿈이었다. 문짝이 약간 들어간 정도로 우그러졌지만, 다행히 차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화를 내며 나를 혼자 길에 남겨둔 채 떠나버리는 꿈이었다.
“내가 있다는 것을 잊었나? 아니면, 일부러 나를 버리고 간 것인가?”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한동안 멍해 있었다. 황당무계한 장면이었지만, ‘인생은 갈 때도, 올 때도 결국 혼자다’라는 문장이 가슴속에서 서늘하게 울렸다. 기분 좋은 꿈은 기분 좋은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고, 기분 나쁜 꿈은 혹시나 하는 불안을 불러온다.
꿈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어쩌면 우리의 예민한 무의식이 체험한 실제 감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한바탕 꿈과 같다고 한다. 항상 양지바른 꿈만 꾼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결코 그런 적은 없다. 그래서 ‘악몽도 한바탕 펼쳐졌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위로가 문득, 위안처럼 다가온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어떤 이들은 이 날을 즐기고, 어떤 이들은 묵묵히 지나치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쓸쓸한 날이 된다. 즐기는 이들에겐 웃는 예수가, 묵묵한 이들에겐 그저 그런 하루가, 쓸쓸한 이들에겐 저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예수를 위한 축제일이라기보다,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보이는 현실. TV에선 반짝이는 조명과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남편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크리스마스는 TV 속에만 있는 것 같아.”
문득 의문이 인다. 예수는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으셨을까? 십자가에서 죽을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감내하기 위해 정녕 오신 걸까? 그런 예수의 탄생을 사람들은 오늘, 환하게 불을 켜며 즐기고 있다. 어딘가 모순이다.
때로는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외쳤다가도, 다음 날에는 이 삶이 지옥 같다고 되뇐다. 그런 갈팡질팡 속에서 반평생이 흘렀다. 세상 구경 잘했다 싶다가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순간도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나조차도 믿을 수 없는 삶을 위해 예수가 오셨다고 상상해 보았다. 순간, 슬며시 눈물이 났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죄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예수는 그런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하지 못한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의 나라, 그곳이 천국이란다. 희생하고, 돕고, 용서하렴.
그러면 네 마음에도 그 나라가 찾아오게 될 거야.” 그분은 그 말을, 말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살과 피로 증명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눈도장을 남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의 탄생은 신적 능력이 아닌, 담대하고도 온전한 사랑의 결단이었다. 오늘 크리스마스는 내 마음 한편에 조용히 잠자고 있던 예수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내 마음 안에서 달처럼 은은히 떠오른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시작된 위대한 사랑이 이 겨울, 내 삶을 다시 따스하게 덮는다. 오늘, 감사가 스며든 크리스마스.
내 마음에 메리크리스마스 달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속삭인다. "오,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