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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배움

by 별빛수

가끔, 새로운 배움이라고 느끼는 일들이 벌어진다. 오늘은 책에서 벌어졌다. 감정에는 이해와 행동 두 가지 모두에 대한 가이드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아마도 예전에 누군가 가르쳐 주었을 텐데 이제야 마음 밭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그들의 기분에 대해 가르치고 자신의 감정을 믿고 이해하며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도와야 하는데, 아이들이 감정적일 때 그 작업이 가장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조용할 때 차분하게 '화'에 대해 유용하고 생산적인 논의를 하기를 바라는 교사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아이들이 화, 슬픔, 공포, 자부심, 사랑, 애정, 수치심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은 실제로 그런 감정을 느낄 때다.


화가 나거나 슬픈 아이와 함께 앉아 그런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대화 나누는 부모는 아이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첫째, 네가 이런 끔찍한 기분을 느낀다고 해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둘째, 네 기분 이해해. 네가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네 기분을 믿어. 네 본능과 직감은 자연스러운 거야. 셋째,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넷째, 이런 감정을 느껴도 괜찮아.


아이가 못된 행동을 해도 인내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부모 역시 아이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첫째, 너는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를 지닐 수 있어. 둘째, 너는 문제를 일으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 셋째, 너와 나는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한 팀이야.


아이의 감정을 그대로 존중함 없이는, 아이 자신이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 어떤 무엇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치솟은 감정을 누군가 인정해 줄 때, '난 혼자가 아니야.'를 저장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항상 밖에서 일을 하셨다. 밤이 되면 내 눈에 보였던 엄마다. 너무너무 졸린 나를 흔들어 깨우며 한 숟가락의 밥을 먹이기 위해 애가 타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일요일 아침에는, 교회에 갈 시간이 된 것 같았는데, 배가 아픈 나를 등에 업고, 그 좁은 방안을 동동거리며 달래주던 모습이 생생하다. 아마도 서너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뚜렷하게 알고 있고 믿게 된 '엄마의 사랑'에 대한 추억이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주유를 가득하게 채운 자동차처럼, 엄마는 내 안에 '그리운 사랑'으로 가득차 아직도 나를 따스하게 해주신다. 엄마 가신 지 어느 새 11년이다. 애착 인형, 애착 담요 등은 내게 없다. 엄마가 나를 사랑했다는 믿음이야말로, 지금도 닳지 않는, 내가 애착하는 삶의 튼튼한 동아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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