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맛을 찾아서, 서울 한복판 완당 원정기

by 별빛수

어제 오후, 우연히 TV에서 부산 밀면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화면을 보는 순간, 한때 자주 찾던 익숙한 그 맛이 불쑥 떠올랐다. 부산에서 살던 시절, 여름이면 단골집에서 시원하게 한 그릇 비워내곤 했던 밀면. 서울에 올라온 뒤론 자연스레 멀어졌던 음식인데, 갑자기 입안이 기억을 되살렸다.


특히 남편은 그 장면을 본 순간부터 눈빛이 달라졌다.

“밀면, 먹으러 가볼까?”

그 말 한마디에 하루가 정해졌다. 이른 아침, 우리는 곧바로 검색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부산 밀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니, 그것도 진짜 그 맛을 내는 집이라면.


후보는 세 군데였다. 첫 번째는 이름이 익숙해 기대했지만, 도착해보니 이미 다른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이럴 수가…’ 아침부터 허탕이라니. 가벼운 한숨이 났다.


두 번째는 연세로 41번길, 연세대 정문 오른쪽 골목 지하에 있는 ‘부산완당, 부산밀면’집. 다행히 영업 중이었고, 무엇보다도 그 거리엔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양쪽 길가에 무료 주차가 가능했다. 서울에서 이런 조건은 거의 보물 찾기나 다름없다.


물밀면과 비빔밀면, 그리고 결국엔 ‘부산완당’까지 주문했다. 이쯤 되면 우리의 식욕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거의 탐험 수준이다. 주방 쪽에 계시던 연세 지긋한 주방장님이 슬쩍 물으셨다.

“세 분이세요?”

순간 나는 다른 손님들이 의식되어 작게, 정말 작게 대답했다.

“아뇨… 두 명이요…”

식당 안 대학생 손님들에게 들렸을까 싶어 괜히 얼굴이 뜨끈해졌다. 나이 들수록 부끄러움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런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셋 중 가장 맛있었던 건 의외로 ‘부산완당’이었다. 맑고 깊은 육수에 부드럽게 감긴 완당피, 깍지처럼 담겨 있는 속 재료까지—입안 가득 퍼지는 정성의 맛이었다.

물밀면은 결국 거의 손대지 못한 채 남겼다.

“괜찮아, 다 먹을 수 있어!”라던 남편의 호언장담은
우리가 이미 ‘왕성한 시절’을 지나왔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든 선언이었다. 그래도 기분 좋은 식사였다.

밥상 앞에서 실컷 웃고, 실컷 먹었다. 길 건너 작은 카페에서 소금라떼와 쿠키로 후식까지 마무리하니, 이 정도면 주말 외출치고는 꽤 괜찮은 코스다.


물론, 남편은 조용히 한마디 남겼다.

“아침부터 꼭 이렇게 멀리, 먹으러 다녀야 속이 풀리냐?”

투덜거림이었지만, 그 말 끝엔 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나와 함께 먹는 이 여정이 싫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투덜거림 속에도 사랑은 묻어 있으니까.


요즘 나는 서울 곳곳을 누비는 ‘맛집 탐방객’처럼 살고 있다. 익숙한 도시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고, 어디든 찾아가 맛보는 그 순간이 하루를 기분 좋게 채워주는 놀라운 힘이 되곤 한다.


오늘의 완당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잊고 있던 기억을 다시 꺼내준 고마운 맛, 함께라서 더 따뜻했던 시간, 그리고 별것 아닌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작은 모험이었다.


나는 이 완당 한 그릇을, 오늘의 한 컷으로 마음속에 조용히 남긴다. 조반이었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그렇게 소중했던 하루라고 정리해본다.


이전 04화루틴이라는 작은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