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길이 있다면, 둘 중 하나로만 가야 하는 것이 인생길이다.
주말이 끝날 때쯤이면 직장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동경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몸은 어느새 직장에 도착해 있다.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면 내게 어떤 일어날까?
읽기 싫어질 때까지 실컷 책을 읽을까? 집안 청소와 정리를 할까? 가벼운 식사지만 그것마저 느긋하게 하지 않을까? 어쩌면, 텔레비전 속에서 하루를 몽땅 헤맬지도 몰라. '우사기의 일본 가정식 한 그릇'을 꺼내 놓고, 장보기 메뉴를 고를지도 몰라.
한 그릇을 설명대로 만든 다음 사진을 찍어 포스팅하지 않을까? 단풍이 미용을 해 주고, 아낀 미용비에 흐뭇해할까? 한가한 시간을 틈타 대형 마트에도 다녀오지 않을까?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대전 언니집까지 드라이빙도 할지 몰라.
교보문고에 가서 신간 목차를 훑어보고 커피숍 독서를 할까? 집구석구석에 있는 묵은 물건들을 꺼내어 분리수거 작업도 괜찮아. 집안의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겨 놓고 새로운 분위기를 만끽할까?
직장에 가지 않고, 이렇게 살았으면 나는 만족했을까? 내가 가보지 못했던 길의 이야기들은 어째서 상상이 되는 것일까? 나의 몸이 있는 곳의 이야기들만이 진실인 것일까? 나의 상상들은 진실이 아닌 것일까? 책을 읽다가 책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왜 행복해했던 것일까? 실상이 아니라 허상임에도 어찌하여 즐거웠던 것일까?
책은, 영화는, 그림은, 음악은 나를 상상 속으로 데려가는 안내자들이다. 심지어 결코 내가 해볼 수 없는 것들까지도 '간접' 경험케 해 준다. 어쩌면, 그것들은 모두 가지 않은 길에만 있는 것인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늘 나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비록 내가 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 곳은 너무도 많았다.
현실의 삶을 살아냄으로써 갈 수 있는 길과 남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갈 수 있는 길이 공존한다.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을 말끔히 내려놓고 이젠 그냥 살아도 되겠다. 내 앞에 놓인 양갈래의 길 중 현실은 운명의 길이고, 상상은 자기 주도의 길이다. 간 길과 가지 않은 길 둘 다에 오늘도 내가 존재한다.
결국, 나는 양갈래의 길 모두를 가고 있었던 거다. 현실의 길이 지칠 때는 입과 눈을 닫고 마음의 빗장을 풀어 상상의 길을 걸었고 상상의 길을 실컷 걷다 지치면 다시 현실의 길에서 '바로 이거야'라며 즐겼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은 있어도 가지 못할 길은 없다. 현실의 길과 상상의 길은 위아래로 나뉘었을 뿐 실은 한 갈래로 흐르고 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어떤 일에 대해 선택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그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한다.
우리는 글을 통한 가상의 공간에서
우리의 무궁무진한 인생을
펼쳐 볼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선택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성격을
가늠해 볼 수도 있다.
남을 의식한 선택을 하기보다
자신의 내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선택의 순간과
그 선택으로 인하여 바뀌는
인생에 대해서 써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