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외할머니로부터 "빨리 먹어라"라는 메시지를 자주 받았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손으로 쿡쿡 찌르셨다. 내 나이 서너 살부터 초등 3학년때까지 그랬다. 어머니는 일 나가시고, 외숙모와 사시는 외할머니께 내가 맡겨졌던 것 같다. 늘 밤늦게 들어오셨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나긴 나는데 불빛 아래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때는 할머니는 왜 자꾸 저러실까 했는데, 외숙모에게 내가 미움받을까 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할머니 또한 며느리에게 눈치를 보셨던 듯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을 보면, 할머니의 애타는 마음이 내 마음에 크게 전해졌던 탓이 아닐까.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다. 하지만, 내겐 나를 위해 기도하셨을 것으로 상상되는 두 분,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의심 없는 믿음, 날 사랑했음을 믿고 있다.
그동안은 모른 척해 왔지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게 있었다. 어머니의 삶이 외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억척같이 일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살 길이 없었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혼자 밭일을 하시거나, 혼자 5일장에서 장사를 하시거나 혼자 큰 교회 청소를 열심히 하시던 모습이다. 큰 어른의 외로운 모습을 어린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모르셨을 것이다. 아직 어리니까 설마... 하시진 않았을까?
지금 시점에선 남편이 그렇게 보인다. 5형제나 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도생의 길을 간 것 같다. 혼자 힘으로 학비를 벌어가면서 공부를 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취직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모든 면이 안정화가 되었을 때마저 가족들을 경계 아닌 경계하는 것이 보였다.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나의 외로움이 그의 외로움을 알아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면 인간의 일생, '고독 아니면 외로움'이라는 무채색이 펼쳐진다.
그렇다. 남의 외로움은 나의 외로움이 알아본 것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외로워 보이는 그 순간 가장 외로운 것은 나 자신일 뿐이었던 것인가. 연륜이 있어 보이는 어른의 자리에 세월이 더해져 다다르다 보니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 하는 나를 본다. 그런 나를 또 내가 본다. 이 마음이 이렇게 아픈 것은 내 아이들도 이런 느낌을 갖고 살지 않을까 하는 상상 때문은 아닐까.
지금 내 감정은 슬픔, 고민됨, 차분함, 걱정됨, 외로움이다. 이 감정 아래에 흐르는 욕구는 연결감, 나답게 보임, 정서적 안심이다. 핵심 욕구는 '정서적 안심'인데, 심장집중 호흡을 하며 "지금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마음에 던져 보았다.
슬며시 솟아오는 또 하나의 내가 해주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에게 외로움이 없었다면, 신을 찾았을까? 어머니의 외로움, 남편의 외로움, 나의 외로움, 아이들의 외로움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는 곧장 기도하는 마음이 되더라. 혼자인 듯하여 외로움으로 읽긴 읽지만, 그 이유 때문에 하늘을 우러러보게 되고, 한번 더 그들과 너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었니? 외로움은 신이 만들어 놓은 초대의 시간이야. 하여, 외로움을 주신 것 감사해 봐. 외롭게 비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한 기도도 해주지 않겠니?"
그래서 내 마음의 중심에 놓고 진심을 다해 나의 주님께 기도한다. 내가 외로울 땐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 시간, 내가 무엇이관데 주께서 나를 부르시는가...하늘카페에서 주님과 차 한잔하는, 끝내 모든 것이 감사로 흐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