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후 글쓰기
직장을 떠난 첫날, 달력의 숫자가 낯설게 다가왔다. 늘 바삐 채워지던 일정표가 텅 비자, 어쩐지 시간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잠깐 멈춘 것뿐인데, 오래된 기계가 갑자기 정지한 듯, 몸과 마음이 서로 엇박자를 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들렸다. 한참 묻혀 있던, 내 안의 작은 목소리 하나.
“이제,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야.”
나는 오랫동안 나름대로 글을 써왔다. 그런데 글쓰기가 늘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글은 기술이 아니라 조용한 용기였다. 때로는 나조차 꺼내기 망설이던 마음을 천천히 마주 보는 일이었다.
그 마음을 단어로 엮어내는 일은, 낡은 서랍을 열고 오래된 편지를 꺼내 다시 읽는 일과도 닮아 있었다. 조금은 떨리고,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나 자신을 따뜻하게 대접하는 기분이 들었다.
몇 해 전, 책쓰기 모임을 참여한 적이 있다. 참가자들의 나이는 대부분 20-40대였고, 시작은 늘 비슷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이게 특별한 이야기가 될까요?”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사실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뜻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젊었을 때, 갓 발령받은 시골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며 노는 모습을 보다가 저도 배우고 싶다고 말했죠. 그때 석희라는 아이가 망설임 없이 자전거를 내주고, 뒤에서 잡아주며 타보라고 했어요. 자전거가 그렇게 무서워 보이지는 않았는데,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기우뚱 넘어지고 말았어요."
그 일을 겪고 난 뒤로 나는 자전거를 멀리하게 되었고, 결국 지금까지도 자전거를 제대로 탈 줄 모른다. 그런데 가르쳐 주겠다며 환하게 웃던 석희의 얼굴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당시엔 머리를 단정하게 깎은 '깍두기 머리'였는데, 나는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넌 나중에 공군이 되면 정말 잘 어울리겠다."
몇 년 뒤, 정말 석희가 공군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느꼈던 놀라움, 그리고 교사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도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지금쯤 50대가 되었을 석희는 어떤 모습일까. 문득 참 많이 궁금해졌다.
내 이야기를 들은 뒤, 방 안엔 잠시 조용한 숨이 돌았다. 그러고는 다른 이들도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 저도, 제 기억을 한 번쯤 글로 적어보고 싶었어요. 요즘 자꾸 마음이 가라앉는데, 오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은 마치 촉촉한 바람처럼 방 안을 가만히 채웠고, 이어지는 고백들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잊힌 꿈, 꾹 눌러두었던 분노, 마음 한 켠에만 간직했던 작은 기적들…참가자들의 눈빛이 서서히 변해갔다. 자신의 삶을 처음으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얼굴엔 조금은 놀랍고, 조금은 평화로운 빛이 어려 있었다.
나는 그날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그날, 글이 단지 기록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다. 글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조용히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이고, 흐릿해진 감정을 또렷하게 떠올리게 해주는 거울이며, 지나온 삶을 아름답게 빛나게 해주는 필름 같았다.
기억 속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렇게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땐 참 열심히 살았지.”
“그 결정은 쉽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어.”
“그 시간도 결국, 나를 만들어준 소중한 일부였구나.”
마음은 말보다 오래 기억하고, 글은 그 마음에 이름을 붙여주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 된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그러면 우리는 어김없이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그냥 그래요.”
하지만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 '그냥'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막연하던 하루가 구체적인 표정을 갖게 되고, 무뎌졌던 기억이 다시 손끝에 닿기 시작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단순히 삶을 떠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다정하게 품고, 조용히 위로하는 존재로 변해간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라면 그 위로는 얼마나 큰가.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글은 유명한 사람만 쓰는 것이 아니다. 조명을 받은 삶만이 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제 몫의 시간을 성실히 살아낸 사람이라면 누구든, 삶을 글로 남길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귀감이 되기 전에,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는 단단하고 참한 선물이 된다.
나는 요즘 그렇게 하루를 써 내려가고 있다. 오늘 하루의 기억을 조용히 펼쳐놓고, 그림처럼 마음속에 그려본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꺼내어 지나온 길을 천천히 되짚어볼 날이 올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내가 만나게 될 사람은 다름 아닌, 여전히 살아 있는 나 자신일 것이다.
내 마음 한켠에서 조용히 말이 들어온다.
“아직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불러주고 싶은 단어가 많아.”
이 말을 다시 노트에 옮긴다. 느리게, 조용히, 그리고 진심으로. '써야, 비로소 보인다. 그리고 써야, 비로소 들린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