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에서 회복까지
퇴원과 동시에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하지만 삶은 문장처럼 온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점으로 계속, 또 계속 이어지는 것이기에 그 후의 저의 바뀐 삶에 대해 에필로그를 쓰려고 해요. 현재 시점에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흘러온 이야기를 말하듯 쓰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3년 전의 제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그때가 2월이었으니 꼭 3년이 지났네요.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는 이야기를 떨쳐버리기 위해서 이 글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사고 장면을 떠올리며 글을 쓸 때마다 손에 식은땀이 났는데, 이제는 보송하게 마른 손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네요.
퇴원하고 약 3개월 동안 재활치료를 받았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지요. 처음 재활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아직 뼈가 다 붙지 않아 아주 약하게 마사지를 하며 조금씩 손을 풀어주었습니다. 잘린 건 손가락이었습니다만, 아픈 건 손가락만이 아니었습니다. 손가락 두 번째 마디부터 손바닥의 1/3이 되는 지점까지 절개한 상처가 딱딱하고 당겼습니다. 손바닥을 쫙 펴려면 손가락부터 이어진 상처부위가 단단하게 나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살을 부드럽게 해주는 크림을 처방받아 손가락과 손바닥에 난 상처를, 손목에 난 상처를, 팔뚝에 난 상처를 수시로 마사지해주었습니다. 수술실에 다녀올 때마다 하나씩 생긴 영광의 상처들이라 '고생했다' 이야기해 주면서요. "다리도, 팔도 한 번 안 부러져본 애가, 한 번도 꿰매본 적도 없는 애 몸에 이렇게 많은 상처들이 생겼네." 엄마는 무엇보다 제 몸에 상처가 이리 많이 생긴 것을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열심히 마사지를 해주고, 한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다니며 자외선을 피해 주었더니 3년이 지난 지금은 자세히 보지 않는 한, 잘 보이지도 않아요. 이미 제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끼는 것도 같습니다.
퇴원하기 전, 몇 개월 후 유리피판술로 채워놓은 살덩이를 축소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재활을 하면서도 마지막 마디는 굽은 채로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 수술을 하고 나면 좀 나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9월에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싫으면서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어요. 그런데 웬걸요. 9월에 진료를 받으러 갔더니 수술을 안 받아도 될 것 같다는 것 아니겠어요? 살 때문에 눌린 신경도 많지 않아서 수술을 해도 움직임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고요. 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좋은데, 여기서 더 가동성이 좋아진다는 가망은 없는 것이니 어찌 보면 사형선고와도 같았어요. '너는 여기까지다.' 하고요.
지금의 저는 여전히 그 상태입니다. 마지막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고 살짝 굽어있어요. 손바닥에 난 상처는 여전히 당깁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이마저도 적응이 되었는지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물건을 집을 수 있고, 타자를 열 손가락으로 칠 수 있고, 바이올린을 활을 어설프게나마 걸어쥘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거면 충분하죠.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아, 손가락의 모양도 많이 변했습니다. 우선 왼쪽 검지에 비해 다친 오른쪽 검지는 반 마디 정도 짧아요. 그리고 절단된 부위의 뼈가 상당히 굵어졌습니다. 오른손 검지에 항상 끼고 다니던 반지가 있는데, 당연히도 들어가지 않더군요. 뼈가 부러지고 나서 다시 붙으면 훨씬 단단하게 붙는다니 럭키비키 아닌가요? 그리고 손가락이 절단되고 다시 접합하면 아주 신기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원래 있던 손톱이 빠지고 새로운 손톱이 생겨요. 손톱이 희한하게 갈고리 모양으로 자랐는데, 뭔갈 팔 때는 오히려 편합니다.
변한 손가락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럭키비키라고 이야기하지만 때마다 슬프고, 속상하고, 억울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해." 하고요. 그런데 삶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좋은 일 옆엔 나쁜 일이 친구처럼 붙어있다는 걸 인정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내게 일어난 나쁜 일이 이 정도라 다행이라고요.
나쁜 일 옆에는 좋은 일이 찰싹 붙어 있을 테니 이제 나쁜 일이 생겨도 겁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못나고도 사랑스러운 손이 가져다준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