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SPC에서 기계끼임으로 20대 여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싶어 다시 검색해봤다. SPC 샤니 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는 기사가 또 있다. 기사화되지 않은 죽음이 얼마나 더 있을까? 그늘 뒤에서 부여잡고 있는 상처들은 또 얼마나 될까?
자본주의에서는 가치를 숫자로 환산할 수 있다. 사업주라면 직원을 고용할 때, 그에게 줄 봉급과 그가 회사에게 줄 이득을 계산할 것이다. 직원이 나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수익과 회사가 직원에게 투자해야 하는 비용을 저울에 달아볼 것이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계산이다. 문제는 저울의 기울어짐 정도가 심해질 때 나타난다. 투자는 하지 않으면서 직원이 황금알을 낳기를 바란다. 여기서 투자는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포함한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춰두어야 한다. SPC 공장에서는 직원이 기계에 끼어 죽어가도 기계 작동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넷플릭스의 '중증외상센터'라는 드라마 중 "외상은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대사가 있다. 산업재해나 외상은 위험도가 높은 직종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산업재해 예방에서도 비슷하게 적용해볼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라서, 나이가 많아서, 혹은 너무 어려서, 장애가 있어서, 가난해서, 힘이 없어서 그저 손 놓고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예전보다 안전 설비가 잘 갖춰졌고, 직원들을 아끼고 조심하는 회사도 많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지금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고, 친구고, 지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부 그들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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