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애순이처럼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로 보는 삶

by 수윤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폭삭 속았수다’를 재밌게 봤다. 재밌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울고, 웃고, 함께 아파하고 기뻐했다. 애순이를 보며 엄마를 떠올렸고, 금명이를 통해 나를 돌아봤다. 지금은 금명이에게 이입하지만, 나이 들어가며 애순이가 떠오르는 날이 점점 더 많아질 거다. 이 드라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미리보기로 보여주었다. 보통 이런 류의 드라마를 보면 늙는 것에 대해, 앞으로의 고단한 앞길에 대해 서글퍼지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이 드라마를 보면서는 서글프지 않았다. 오히려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난 그 이유를 애순이에게서 찾았다. 모두가 관식이를 외칠 때, 나는 애순이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애순은 어려서부터 서러울 일이 많다. 바당(바다)에 아버지를 잃고, 작은아버지 집에 얹혀살며 구박받는다. 엄마 집에서 따뜻한 안정감을 느끼려는 찰나 바다가 또 엄마를 데려간다. 관식과 결혼하기 전부터 부모 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반기지 않고, 결혼해서도 고된 시집살이를 한다. 가난했던 어린 부부는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나날을 보낸다. 살림이 좀 피고 살만하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핏덩이 막내아들을 바다가 또 데려간다. 웬수같은 바다. 사무치는 바다지만, 또 한없이 내어주는 바다라 그 품에서 자식들을 다 키워낸 애순. 자식들은 바다처럼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자식에게 집도 배도 다 내어주고, 애순은 다 늙어 시장에서 오징어를 팔며 몸도 마음도 고생한다. 남편 관식의 배팅으로 가게를 얻어 식당을 잘 나가는 맛집 사장님이 되고 나니 녹슨 무쇠 관식이 보인다.

하지만 애순의 인생은 이렇게만 설명되지 않는다. 작은아버지 집에 살 적에 애순 몫의 조구(조기)는 없었지만, 할머니 몫의 조구를 받아먹었다.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 광례 밑에서 엄마의 사랑을 담뿍 받고 살았고, 엄마가 떠난 후에도 관식의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 속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호된 시집살이에도 반 바퀴 턴을 해서 가족을 든든히 지켜주는 관식이 있었고, 쌀이 떨어질 때면 딱 하루 먹을 만치 쌀을 몰래 넣어두는 주인집 노부부가 있었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도 먹여 살릴 예쁜 자식이 둘이나 더 있었으며, 젊은 부부를 걱정하는 온 마을이 있었다. 애순의 오랜 꿈을 대신 이루어 서울대학교에 가는 똑똑한 딸이 있다. 엄마를 생각하는 착한 아들이 있다. 고생했지만 식당이 대박 나 돈을 많이 벌기도 했다.


애순에게는 인생은 바다 같았다. 소중한 사람들을 데려가는 나쁜 바다, 가족이 먹고살 수 있도록 내어주는 바다. 애증의 바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다. 명이 있으면 암이 있다. 좋은 일 뒤에는 늘 나쁜 일이 기다리고 있고, 사랑이 있으면 배신이 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나쁜 일이 그 뒤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하다가 뒤통수를 맞는다. 반대로 나쁜 일 뒤에도 좋은 일이 있는데, 이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못하다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알려준다.


애순이 힘든 상황마다 무너지지 않고, 계속 일어날 수 있었던 비결은 희망이다. ‘긍정적’이라는 단어에만 국한될 수 없는 ‘희망’이 애순에게는 있다. 금명의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배와 집을 팔고 낡은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에도 애순은 웃는다. 속상한 마음일랑 당연했겠지만, 입 밖으로 어떤 군소리도 내뱉지 않는다. 그저 웃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하며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몸을 움츠리고 견디다 보면 반드시 “너무~ 좋아”라고 말할 날이 또 온다는 걸 애순은 알고 있었을까.


애순이 나이가 들어도 소녀같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관식의 사랑일 수도 있고, 타고난 성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애순의 ‘꿈’이 그녀의 소녀스러운,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물심양면이 부족해서 급장을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계장이 되어 한 마을을 이끄는 애순. 시인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시를 써 결국엔 시집을 발간한 애순.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으로 살았다.


나는 애순이처럼 살고 싶다. 관식의 사랑을 무한히 받아서도 아니고, 자식이 서울대를 가서도 아니다. 움츠리고 묵묵히 힘든 시간을 견디는 힘을, 좋은 날이 왔을 때 좋은 줄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꿈을 포기하지 않고 품어내는 순수함을 닮고 싶다. ‘폭삭 속았수다’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대사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우리에게 이런 순간이 자주 찾아왔으면.


“나 지금 너~~무 좋아~”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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