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황홀함의 기억

(1)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by 장동원

by 장동원

긴 글의 처음을 맡게 되었다. 무엇으로 첫 글을 쓸지 한 주간 긴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남산타워, 경복궁, 63빌딩, 서울시청. 서울을 대표하는 웅장한 공간들을 수없이 생각해봤지만, 처음부터 쓰기에는 너무 막연했다. 결국, 가장 내게 가깝고 익숙한 공간을 고르게 되었다. 20년간 살아온 동네에 불쑥 찾아와서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곳, 바로 모든 수업의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6살 미취학 아동이었던 시절. 아는 세계라고는 집과 유치원뿐이었고 할아버지와 함께 본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본 수많은 나라는 이어서 방송되는 ‘동물의 왕국’만큼이나 먼 세계였다. 그런 내게 국립중앙박물관이 찾아왔다. 동네에서 중앙선 기찻길만 넘어가면 바로 대한민국 최대의 박물관이 위치한다니. 지금 생각해보니 이는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남들은 수학여행 때 올라와 시익 한 번 보고 가는 게 끝인 곳을 나는 채 열 살이 되기도 전부터 드나들 수 있었다니.
개장하고 1년쯤 지났을 무렵, 다른 말로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박물관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마침 하던 사극 ‘연개소문’에서 들었던 고구려, 신라, 백제를 본다는 것에 너무나 설렜다. 고구려관의 사신도 벽화(그때는 모작인 줄 몰랐다), 백제관의 거대한 독무덤, 가야관의 철갑 등의 유물들은 각 관에 들어갈 때마다 일곱 살 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바뀌었다. 그중에 압권은 신라 금관이었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홀로 빛을 받던, 그리고 그 빛을 다시 비춰내던 금관.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쓰고 나오는 허접한 모사품과는 차원이 달랐다. 살면서 황홀함이란 감정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신라 금관의 감동을 안고 박물관 1층 한쪽을 다 보고 나왔을 때, 경천사지 10층 석탑 근처에 앉았다. 그리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엄마, 나 고고학자 할래.”
그 후로 한동안 역사와 한자에 빠져 살았다. 꿈은 점점 구체화 되면서 학예연구사, 고문헌학자, 신라사 교수 등으로 변이를 거듭해갔다. 물론 그 꿈은 이후 크고 작은 충격들을 마주하며 가이드, 외교관, 정치인, 시인을 거쳐 오늘에 문학 연구자까지 이르렀다지만 그게 ‘나’의 시작이고, 내 세계의 시작이었다. 어쩌면 이 글의 시작일지도.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매년 한 번 이상 찾아왔지만, 박물관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찾은 것은 13년 만에 처음의 일이었다.
이촌역에 생긴 지하 연결통로를 통해 국립중앙박물관 경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하 보도는 확실히 이동하기 편리했다. 과거에는 2번 출구로 나가서 용산미군기지 담벼락을 따라 3분 정도 걸으면 박물관 서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계절마다 바뀌는 가로수의 풍경과 미군기지가 주던 오묘한 감정들. 유물들을 형상화한 전자조형물로 꾸며진 지하 보도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지하 보도는 박물관 다운 디자인으로 채워져 있긴 하지만, 박물관에 들어가는 길에 놓기에 과연 적절한 조형물인가 생각이 든다. 빗살무늬 토기, 신라 금관, 고려청자 매병 조형물. 이것들이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사를 대표하는 유물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박물관에 이제 들어가는 길에 이것들을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직 유물들을 감상하지 않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볼 수나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중에 많은 이들이 어린이와 학생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 역사에 충분히 지식을 갖춘 성인 관람객이라 해도 문제다. 유물을 관람할 때의 감동이 반감되지 않을까. 만약 박물관을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따로 나뉘어 있다면 그 나오는 길에 설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시 땅 위로 나오면 박물관에 올라가는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게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저 위에 있다! 이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돌길을 무작정 올라야 한다. 보이는 광경은 옆에 가져다 둔 대나무와 콜리플라워를 심어둔 화분 정도. 정작 국립중앙박물관의 거대한 호수는 보이지 않는다. 진입로를 다 올라와서 난간에 기대어 봐야 호수가 겨우 보인다. 그마저도 건너편에 호수 건너로 보이는 것은 이촌동 아파트뿐. 그나마 나중에 세워진 정자가 그 삭막함을 덜어내려고 호수에 홀로 애처롭다.
이 비운의 호수는 거울못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계획 당시 이름은 영지(影池). 계획 당시에는 이름만 달랐던 것이 아니라 호수의 크기와 박물관 진입 방법 역시 달랐다고 한다. 현재의 거울못보다 두 배의 면적이었으며 관람객들은 영지를 돌아 박물관에 진입할 수 있게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관람객들은 영지와 영지에 비친 박물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90년대 말 찾아온 IMF 외환위기와 합리성 담론 속에 영지는 계획으로 그치고 지금의 거울못만이 남았다. 원 계획자가 구상했던 멋을 어느 정도 느끼고 싶다면 거울못 건너편으로 걸어서 박물관 건물 쪽을 바라보면 된다. 안타깝게도 이 광경은 주 관람 동선과는 동떨어져 있다. 산책을 나온 주변 주민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일 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간다고 하자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층부터 보면 초짜인거 알지?”
내가 이 박물관을 13년을 다녔는데…….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는 게 이런 경우일까. 다만 그의 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여러 번 다녀 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다. 대부분 1층을 관람하고 나면 지쳐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이들이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냐는 의견을 제기한다. 맞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구조는 우리를 자연히 1층부터 보도록 인도한다. 1층은 시대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구석기, 신석기부터 시작하여 조선까지. 한국사를 쭉 둘러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조선까지 보고 나오면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출입구이다. 지친 몸과 아무 생각이 없는 머리는 자연히 박물관을 나가게 만든다. 박물관 2층, 3층의 유물들은 볼 기회가 없다. 다만 구조를 탓할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가 루브르 박물관 같은 해외 유명박물관에 가서도 모든 전시실을 순서대로 둘러보지는 않는다. 1층은 한국사를 통시적으로 개괄할 수 있게 하고 그 위에서는 세부적인 주제를 둘러볼 수 있게 한 구조는 오히려 친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천 리의 안목을 다하려면 한 층 더 올라야 한다지 않던가.

박물관 안을 천천히 누비다가 잠시 카페에 앉아 국립중앙박물관에 관한 기사를 쭉 찾았다. 마침 이번 국정감사에서 어느 의원이 전국 국립박물관의 외국인 관광객 비율을 따지고 나섰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인데 외국인 관광객 비중이 3.8%밖에 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나, 영국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70%에 이르지 않나 하며 외국인들을 더 불러 모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문제의 근거를 너무 자국 중심적인 전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글쎄다. 그 의원은 우리나라가 지금이라도 제국주의를 표방하여 전 세계를 정복하고 진귀한 보물을 약탈해오자는 꿈을 가졌던 것일까. 정녕 그렇다면 국방위에 가셔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에 외국인 관람객의 비중이 이렇게 낮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안타까워하는 이유를 잊지 말자.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다. 어떻게 우리 유물에 그들이 관심 가지게 하고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라 하면 바로 모나리자를 떠올리고,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이라 하면 바로 옥배추를 떠올리는 것처럼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무엇이 떠올라 가게 될지 컨텐츠를 찾고 전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1층의 신라 금관, 2층의 나전칠기, 3층의 반가사유상 등등 충분하지 않나.

나오는 길에 신라 금관총 금관을 다시 보고 나왔다. 단체로 온 아이들이 모두 우와 하며 해설사 선생님에게 ‘이거 진짜 금이에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요즘은 예전처럼 정통 사극이 많지 않으니 아이들이 저런 형태의 금관을 본 것은 거의 처음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에 아이들의 표정은 저 금관을 처음 본 나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얼마나 많은 이에게 황홀함을 선사하고 그로써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