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을 따뜻하게

(4) 한강시민공원 by 강신명

by 장동원

“한강이나 가야겠다. 16도면 뛰어내리기 딱 괜찮네.”


시험을 잘 봤냐는 물음에 당신은 그렇게 답하곤 했다. 안타까운 일이 생겼을 때 한강 물 온도를 체크하는 것은 절망스러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농담이었다.


답답한 일생에 고등학교 중간고사조차 그리워질 지경이던 어느 저녁, 나는 한강시민공원을 찾았다. 낮이 짧아진 탓에 저녁 일곱시에도 해는 벌써 63빌딩 너머로 떨어지고 있었다. 해질 녘의 한강은 아름답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따라 켜진 아파트와 사무실의 불빛은, 이 무렵의 한강이 개인 정원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마저 들게 한다.


한강시민공원이 정말 아름다운 이유는 그저 “한강”때문이 아닌 그곳의 “시민” 때문이다. 함께 강가에 앉아 서로에게 기댄 커플들을 보니 중간고사가 끝난 날 한강에 뛰어내리겠다는 누군가가 생각났고, 웃으며 피자를 먹는 내 고등학생 무리를 보니 즐겁게 우르르 몰려 다니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떠올라 조금 섧어졌다. 그리고 언젠간 내가 이루고 싶은, 한강을 산책하는 어느 행복한 가족. 그날 내가 한강에서 본 것은 갑갑함보다는 해방감, 절망보단 희망에 가까웠다.


최초의 인간이 아프리카의 어느 초원에서 이족보행을 시작한 이래 인류는 물질적 결핍에 쫓겨 버거운 일상을 살아가야 했다. 수천년간 쉬지않고 발전해온 과학기술도, 정치인들이 대중에게 내세운 표어들도 결핍과 노동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결핍에 쫒기며 살아온 인류가 만든 한강공원과 한강을 따라 촘촘하게 지어진 빌딩의 불빛들, 그리고 그 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히려 작은 위로가 되는 것이다.


비좁은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넓은 강을 가로지르는 27개의 한강다리에는 하나같이 자살방지 전화가 비치되어있다. 도시의 한 가운데 쌩뚱맞게 놓인 이 강에 의해 한 도시가 주거환경이 전혀 다른 강남과 강북으로 나뉜다. 서울의 기적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서울의 비극적인 그림자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강을 덮어버릴 수는 없을 노릇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모두를 위한 한강을 만들어 절망을 들고 찾아온 사람들이 절망을 떠내려 보내고 위로를 얻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한강을 찾는 일이 잦다. 그리고 언제나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떠내려 보내고 희망을 찾아 돌아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