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의 아파트

(3) 반포주공1단지 아파트 by 장동원

by 장동원

주공, 대한민국에서 이 이름을 들어보지 않고 살기란 어렵다. 잠실, 상계동 등 서울의 주요 대단지부터 산본, 부천, 광명 등 신도시까지. 이제는 LH라는 이름으로 바뀌긴 했지만, 광교, 동탄까지 한국 전역에 누군가의 보금자리들을 지어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지난주 잠실 주공의 기억을 적어준 신명이 형처럼 주공 아파트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다들 주공에 관한 기억 하나씩은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시 한 편씩 안고 살지는 못해도 주공이 담긴 장면 하나씩은 안고 사는 것 아닐까.


나의 가슴 속에 남은 주공은 반포주공 1단지이다. 지금 재개발을 앞둔 반포주공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참 세세한 이야기가 많다. 재개발 확정 이후 얼마나 가격이 폭등했고 초과이익환수제의 영향은 어떻게 되는지 그 아파트 주민이 아니라면 관심이 없을 법한 이야기들부터 한 가족의 유산분쟁으로 재개발에 난항이 걸렸다는 자극적인 소식까지. 많은 이들에게 부의 상징이고 선망의 대상이 되다 보니 관심이 이렇게 쏠리나 보다. 물론, 나의 기억 속 반포는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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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반포라는 이름을 들었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나는 중학교 진학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동네 근처 중학교에 당연히 가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나의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셨고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6학년 2학기가 되자 하나둘씩 친구들이 동네를 떠났다. 대체로 공부를 잘하던 친구들(혹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매일 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좀 더 나은 중학교를 찾아 떠난 것이었다. 마침 스마트폰과 카카오스토리가 보급되던 시대였다. 그들이 강 건너 어딘가로 갔다는 소식들이 들렸다. 그 가운데 가장 자주 들렸던 이름이 반포주공이었다. 대치동과 함께 강남을 대표하는 명문학군의 동네라는 이미지는 그렇게 중학생에게도 심어졌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중학교 3학년 때, 그 반포를 매주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 때문이었다. 정말 갑작스럽게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께 반포로 학원을 다니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무슨 이유에서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학원을 가겠다 했는지는 모르겠다. 누가 그 계기를 물어보면 대충 그 전해 교통사고로 누워서 놀고먹다 보니 노는 데 질렸다고 답하곤 한다. 확실한 정답은 아니다. 조금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때 본 예술 영화나 소설의 영향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다만 누구도 궁금하지 않은 물음엔 확실히 답할 수 있다. 왜 하필 반포였냐는 질문.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장소’라는 이미지가 새겨졌고 그 이후로도 반포로 학교는 가지 못해도 학원은 다니던 친구들을 통해 점점 그 이미지가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2월, 처음 반포의 학원가에 발을 디뎠다. 영어 학원이었다. 영어는 나름 학교 시험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항상 받아오던 과목이었다. 만만하게 생각되었다. 학교 시험 성적을 보고 학원에서도 나를 네 등급 가운데 위에서 두 번째 등급의 반에 배정해 주었다. 다 쉬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단어는 반타작, 문법은 그도 못 했고 듣기는 반의 반이나 맞췄을까. 동의어가 왜 그리도 많은지 완료 진행은 무슨 쓸데없는 소리들인지, 토익에나 나오는 호주 영어를 왜 벌써 들어야 하는지. 사람이 탈탈 털리고 밑바닥까지 봐야 겸손해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참 모르는 게 많으면서 깝죽대는 애였다. 다만 깝죽대는 방향이 달라졌을 뿐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없다.

같은 반의 아이들은 모두 그 서초 일대의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반포중, 신반포중, 세화여중, 서문여중, 동덕여중 등등. 다들 8학군 명문중을 다녔고, 다들 이 학원가를 누빈지 오래되었다. 다들 나보다 잘했다. 모든 시험에서 나는 반의 꼴찌를 도맡았다. 화가 났다. 좀 이겨보고 싶었다. 왜 이런 건지 이유를 한동안 생각했다. 학원의 강의 실력이 대단했는지, 그들의 노력이 컸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나보다 단련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연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깨달음은 내가 자발적으로 밤을 지새도록 만들었다. 반에서 중간 언저리까지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도 욕심을 내서 집에서는 좀 멀지만, 대학 잘 보낸다는 곳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4년. 생각 없이 한글과 알파벳과 수식을 그리다 보니 대학도 괜찮게 오게 되었다. 대학에 와서도 그 시절 반포 학원가에서 배운 것들을 어디에 쓸지 모르겠다. 과거완료진행 시제나 구분구적법을 중국 문학 어디에 적용해서 유의미하게 쓸 수 있겠나. 다만, 그것들이 나를 대학에 보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매일 두 시까지 깨어있게 한 그 깨달음이 있었다. 그 깨달음만큼은 아직도 나를 굴리는 힘이고 그곳에서 얻은 최고의 혜택이다.

최근 입시를 놓고 많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여름을 뜨겁게 했던 한 위선자의 딸. 그녀가 대학과 대학원 입학을 위해 저지른 부정부패를 두고 전 국민이 분노하다가, 좌로 우로 갈렸다가,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지다가. 또다시 입시의 공정성을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시를 확대하고 외고와 자사고와 국제고는 폐지하겠다고 한다. 수시 학종에서 다양한 내용을 못 적게 하겠단다. 참 기이한 결론이었다.


어제(29일) 한 정당이 국회에서 정시 확대의 필요성을 두고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라기 보다는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성토대회였다. 수시 역시 줄 세우기다. 너무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요구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라고 하며 교사, 학부모 등이 나와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정부 시책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뉴스는 그들의 성토만을 전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교사가 정시로 많은 학생을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는 목동의 명문고 교사였다는 것도, 학부모는 수시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학생들을 주로 좋은 대학에 보내는 학교의 학부모라는 것은 아무도 보도하지 않았다. 과연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을 줄이고 폐지하는 것이, 정시와 교과 전형이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일까?


반포를 경험해 본 나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원생의 반 이상이 1등급이라고 광고하던 학원들이 있었다. 반포에서는 1등급을 받아내는 학생의 비율이 반 이상이라면 다른 지역에서는 1등급인 학생이 원래 비율인 4%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 아닐까. 명강사, 좋은 관리 시스템, 옆에서 경쟁하는 수준 높은 학생들. 이것들이 반포 등 학원가가 그러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요인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릴 수는 없다.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이들에게 과연 정시는 공정한가? 교과 전형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학원들이 ‘내신 철저 대비’를 걸어놓는다. 학원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전형이 학생부 종합전형보다 나은 점이라면 줄 세우기이되 점수가 명확하게 보이는 줄 세우기라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것은 인정받을 수 있는 공정함일까? 나는 답을 알지 못한다. 종합전형이 가장 공정하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의 입시 개편안이 바른 길이라는 데 동의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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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반포에는 여전히 입시학원이 줄줄이 서 있었다. 다양한 학원들이 자신들의 지난해 입시결과를 주렁주렁 외벽에 걸어 자랑하고 있었다. 어딘가에 내 이름도 있을 것이다. 벌써 트렌드에 맞춰 정시확대에는 수능대비를 잘하는 00학원이라는 전단지도 있었다. 어질어질했다. 반포천 옆 산책길로 피했다. 힘든 수험 생활 때에 친구와 같이 걸었던 반포천은 여전히 내게 위로가 되었다. 이 반포주공 아파트에 살던 故 피천득 작가를 기리는 시비들이 1년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 그 아래로는 남쪽으로 날아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는 청둥오리들이 반포천에서 노닐고 있었다. 고요했다. 반포는 앞으로도 인기 있고 사랑받는 주거지일 것이다. 다만 반포가 사랑받는 까닭이 입시명문이라서가 아니라 반포천과 한강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일 수는 없을까. 많은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필요한 변화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