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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쇄도전러 수찌 Dec 21. 2020

첫 책 계약했어요!

오늘은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날이야. 


원래는 지난 금요일에 해야 할 일이었다. 미팅이 월요일로 미뤄진 이유는 '기차표가 없어서'였다. 코로나로 기차 역시 절반인 창가 좌석만 판다. ㅠㅠ


그럼에도, 나는 손 소독제와 마스크로 나를 무장시키고 서울로 가야 했다. 왜냐면, 오늘은 '출판사'와 미팅이 있는 날이거든…!


몇몇 군데 첫 책 원고를 투고했음에도 모두다 '씹히거나' '반기획 출판' 제의 정도만 들어왔다. 그래, 이 시국에 '여행이 좋다'고 말하는 이상한 책을 내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시국이 풀리기를 기다리며 그냥 되는대로 뒀다. 내가 애쓴다고 될 일은 아니니.


지난주, 한 출판사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마지막으로 투고한 지 2달도 지난 것 같은데. 이제 온 답장은 또 뭐야? 내심 이렇게 생각하며 메일을 열어봤다.


뭐야? 뭐야! 뭐야!!!

다시 읽고 읽어봤다. 내가 생각하는 그 뜻이 맞다.


그렇게 출판사와 미팅 약속을 잡았다. 코로나가 극심하니 유선 미팅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면 미팅을 더 선호한다고 하셨다. 내 생각도 그렇다. 모르는 사이에서 모르는 목소리만으로 정교한 대화가 이뤄질 리 없다.


회사에 반차 내고 서울로 올라가는 날. 소개팅하러 가는 날만큼 떨렸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출판사와 미팅 생각뿐이었다. 사실 내가 준비할 것은 많이 없었다. 출간이나 책에 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나는 그저 경력자가 권하는 대로 수용할 마음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나쁜 쪽으로 책을 이끌어갈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도, 오늘은 내 부캐가 탄생되는 아주아주아주 중요한 날이다. 오랜만에 얼굴에 열심히 색을 찍어 바르고도 KF94 마스크로 얼굴을 단단히 막은 뒤 기차를 탔다.

얼른 40분이 지나 서울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과연, 출판사에서는 내 원고와 책 방향에 대해 무슨 소리를 할까?


한 시간 반 동안 출판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대표님과의 대화. 초반부터 대화가 잘 통해서 '여기다' 싶었다. 내 원고를 얼마나 제대로 읽어줬나 궁금했다. 적어도 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완전히 파악하고 오셨다. 이 시국에 여행책을 내준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기에 내가 많이 따질 점은 없었다.


칼라냐 흑백이냐

사진은 얼마나 넣을 거냐

사진 보정은 어떻게 할 거냐

원고는 언제까지 마지막으로 수정해서 줄 거냐

제목은 이대로 갈 거냐

그리고 몇 가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더 나눈 뒤 미팅이 끝났다.


미팅을 마치자 오늘 온통 나를 각성시켰던 긴장이 삽시간에 빠져나갔다. 드디어 내 책도 세상에 나온다는 생각에, 거리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너무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서, 괜히 발에 채는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주워다 넣기까지 했다.

외식 자제해야 하지만... 너무 배고팠다!

그리고 나니, 배가 고파왔다. 다시 평택으로 돌아가기 전에 영등포역 앞에서 초밥을 먹었다. 좋아하는 연어 초밥을 시켰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니 잘 넘어가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감정이 ‘긴장-기쁨-안도’로 심각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허기'에 대한 감각도 같이 왜곡된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다 먹고도 배고플 초밥 12피스, 겨우 먹고 영등포역으로 돌아와 기차를 탔다. 나름대로 큰일(?) 마치고 살짝 뒤로 젖혀 누운 기차 의자가 그리 안락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내 인생에서 스스로 해낸 것이 많이 없었다. 대학도 부모님 뜻에 진학했고, 그 대학 마음에 안 든다고 입에 달고 살면서도 박차고 나올 자신은 없어 꾸역꾸역 졸업했다. 전공과 관련된 곳에 취업도 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에 다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 늘 비참했다. 여태껏 살아온 시간 이상 이 일을 해야 할 텐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못 하며 산다니. 난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꼭 직업을 박차고 나오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추가로 시작하면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잘 되면 본업도 바뀔 수 있는 거 아닐까? 오늘, 그 가능성을 인정받은 날이다.


기분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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