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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쇄도전러 수찌 Dec 11. 2020

붕어빵의 세부명칭 'K-카스테라, 쿠키, 마들렌'

붕어빵 파는 계절이 왔다. 기억 속 붕어빵은 네 개 천원으로 시작했다가 세 개 천원으로 변했다. 오늘 슈크림 붕어빵이 먹고파 주황색 포장마차의 투명 비닐 문을 헤집고 들어갔다. 붕어빵이 꽂힌 쇠틀 앞에 ‘2개 천원’이라고 큼지막이 쓰여 있다.     


와, 붕어빵이 두 마리에 천원이라니. 물가가 많이 올랐구나. 이천 원 치 사면 나랑 동생 물리도록 먹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나 혼자도 배부를까 말까 한 양을 준다.     

 

그래도 오늘은 슈크림 붕어빵이 너무나 먹고 싶은 날이었다. 바싹하게 구워진 붕어빵 안에 가득한 따끈한 슈크림 한 입 베어 물면 일터서 받은 스트레스가 조금 녹을 것 같았다. 처음 뵙는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는 빵 굽는 모양새가 영 서툴다. 팥도, 슈크림도 넉넉하게 넣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붕어빵 업계도 기술 발달의 영향으로 꽤 균일한 품질관리가 가능했다. 이제는 누런 주전자에 밀가루 반죽 담아 일일이 기울여가며 틀에 붓지 않는다. 밀가루 반죽 짜내는 기계에 달린 호스로 일정량을 짜낸다.


이미 구워져 있던 놈 세 마리에 갓 구운 놈 한 마리를 얻어왔다. 누워있던 녀석들은 기왕에 식은 거(?), 갓 나온 놈부터 맛보겠다. (가끔 이런 앞뒤 맞지 않는 판단을 한다. 불판에 굽는 고기 앞에서도 어차피 식은 녀석은 어쩔 수 없으니 갓 익은 한 점부터 맛보는 게 낫겠다고 매번 생각한다.)     

사진 출처 - pixabay. 내가 만난 붕어는 이것보다 더 노릇했다.

타기 직전까지 구워낸 황금빛 표면은 잘 구운 붕어빵의 표본 같다. 기름기가 살포시 돌면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마주 본 틀과 틀 사이로 삐져나와 전병처럼 구워진 바삭한 끄트머리를 좋아한다. 품질관리를 위해서 손님에게 내어놓기 전 꼬챙이로 그 끄트머리를 다 털어내 버리면, 그러지 말라고 말도 못하고 괜히 말만 동동거린다.      


어릴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붕어빵' 하면 '팥'이 절대적 공식이었고 슈크림은 조금 커서야 등장했다. 지금은 팥도 없어서 못 먹는데, 어릴 때는 팥이 이유 없이 싫었다. 혹시 내가 종이봉투 속에서 집어낸 녀석이 팥 붕어였다면, 팥이 거의 없는 꼬리만 뚝 떼먹고 팥 많은 부분은 엄마 아빠에게 투척하곤 했다. 찐빵도 같은 원리로 흰 밀가루 부분만 떼먹고 가운데 팥은 통째로 엄마 아빠에게 넘겼다. 애 주먹만 한 팥 덩어리를 건네받은 어른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그래도 엄마 아빠는 "그래 엄마는 팥 좋아."라며 별 싫은 내색 없으셨던 것 같다. 지금은 팥도 슈크림도 잘 먹는다. 천원에 세 마리 주던 시절에는 팥 : 슈 = 1 : 2 비율로 천원을 구성했다.      


오늘은 그냥 슈크림만 먹고 싶었다. 길거리 슈크림이 따듯할  주는 녹녹한 맛을 느끼고 싶었다.  마리 사서 어둑한 골목을 걸어 들어왔다. 집까지 가는 길이 멀지 않아 가방 열어 담기도 그렇고, 달랑거리며 들고 가기에는 식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애매한 시간, 골목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퇴근길이면 가끔 보이던 고양이마저 날이 너무 추운지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어쩔 수 없구만(?)'     


코시국으로 손이 더러울까 걱정됐다. 직접 붕어를 잡지 않고 종이봉투를 이리저리 조정해 한 마리만 수면 위로 올렸다. 봉투 밖으로 붕어를 꺼내지 않고 종이 째 감싸 쥐었다. 마스크를 내렸다. 평소 좋아하던 꼬리는 남겨두고 머리 쪽부터 크게 왕 물었다. 아주머니 손길이 뭔가 서툴러 보이더니, 슈크림은 역시 적다. 그래도 좋다. 탄수화물 중독자기 때문에……. 약간 단 밀가루 빵만 먹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굳이 비유하자면 카스테라를 닮은 부위다. 몸통 먹기 전에, 가장 맛있는 부위인 지느러미를 앞니로 정교하게 도려냈다. 붕어'빵'에서 유일하게 '과자' 같은 부위. 지느러미 역시 밀가루 맛만 나지만 바삭한 쿠키 같아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리고 나서야 슈크림이 굵게 박혀있는 몸통을 먹었다.

'역시 나는 슈크림이 좋아.'

고급스럽지도 않을 그 길거리 슈크림이 날 선 마음을 부드럽게 녹였다. 여기는 슈크림빵 생각이 난다. 꼬리가 남았다. 꼬리는 빵과 쿠키 중간쯤 되는 포지션이라고 볼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코리안 마들렌'이라고 해야 할까? 꼬리는 오늘도 속은 대충 채워졌지만 통통해서 맛있는 그 맛 그대로다.     


한번 고삐 풀린 ‘붕어빵 먹방 열차’는 브레이크가 없다. 네 마리를 다 해치우고 나니 두 마리에 천원도 그리 비싸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빵집서 파는 빵보다는 못한 재료로 만들었을지라도, 내가 도착한 시간에 따듯하게 구워주는 빵은 '붕어빵' 밖에 없으니까. 아직은 납득할 만 하다. 팥이면 팥, 슈크림이면 슈크림도 입에 착 맞고. 빵 하나에서 머리, 지느러미, 몸통, 꼬리마다 다른 식감 나는 것도 재미지다. 요즘에 뭐든 단어 앞에 ‘K-’를 많이 붙이니까 각 부위에 ‘K-카스테라, K-쿠키, K-슈크림빵, K-마들렌’이라고 이름 붙이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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