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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쇄도전러 수찌 Dec 10. 2020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운남성 구경

짱구 비트로 제목을 읽어주세요!

쿤밍 같은 대도시는 마지막에 구경하는 것이 진리다. 그래야 짐 걱정 없이 대형할인점에 들러 기념품도 잔뜩 사갈 수 있지. 쿤밍은 다시 비행기 타러 돌아왔을 때 샅샅이 구경할 것이다. 쿤밍에서 하룻밤 묵고 첫 번째 목적지인 리장으로 향했다. 쿤밍에서 리장까지, 얼마 전 우리나라 KTX 같은 고속철이 개통했다고 했다. 기존에 8시간 걸리던 길을 3시간 만에 데려다준다니. 어찌나 다행인지. 2주를 알차게 쓰기 위해 오전 기차를 예약했다. 중국 기차표 사기, 기차 타기가 전부 만만치 않아 보였다. ‘C-trip’ 같은 중국 여행사가 인터넷으로 기차표 예약 서비스를 제공했다. 홈페이지에서 영어도 지원하니 그나마 희망이 보였다.  

   

오전 8시 50분 출발하는 기차. 중국 기차역은 공항보다도 보안 검색이 철저해 최소 출발시간 2~3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고 했다. 기차 도착 2~3분 전에 도착해도 문제없는 기차탑승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 도대체 무슨 검사를 그리한다는 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중국에 전혀 적응하지 못한 이틀 차 여행자, 기차 놓치고 싶지 않아 오전 6시에 눈 비비며 숙소를 나섰다.      

여름이라 해가 이미 훤했다. 숙소에서 역까지 10분 정도 걸어가는 동안, 고소한 음식 냄새들이 급한 발걸음을 괴롭게 만든다. 그 아침부터 커다란 찜기로 만두를 쪄낸다. 솥에 노란 콩물 끓여 갓 튀긴 도넛 위에 부은 음식도 군침 도는 향이다.

‘한 그릇만 먹고 갈까? 아니야 일단 기차역부터 가야지.’

날뛰는 마음 겨우 눌러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국 기차역 크다’는 소리는 과장이 아니었다. 차가운 회색 대리석 건물이 마치 정부 청사 건물처럼 거대했다. 건널목 건너편부터 기차역으로 향하는 사람 행렬이 놀라웠다. 아침부터 어딜 그리 바삐 가는지. 보자기로 감은 짐, 배낭, 여행용 바퀴 달린 가방까지 제각기 들고 끌며 바쁘다. 운남성은 중국인도 꼭 한번 여행 오고 싶어 하는 지역이라고 했다. 중국 내 패키지 여행자로 추측되는 현지 중장년도 많았다. 빨강, 파랑, 노랑 등의 모자로 무리를 구분 지어 뒀는데, 팀마다 스무 명도 넘었다. 모자 색이 최소 무지개색보다는 다양해 뵌다. 팀마다 가이드가 꽥꽥 소리를 질러대 더 정신없는 분위기다. 아무리 적게 쳐 줘도 사오백 명은 이 순간 역 앞에서 바삐 오가는 중이었다. 예매한 표를 실물 표로 바꿔야 했다. 기차역에는 온통 중국어 설명뿐. 도대체 어디서 표 바꿔야 할지를 모르겠다! 까막눈의 심정이 이런 기분일까? 사람들이 손에 종이를 쥐고 줄지은 창구로 무작정 가서 맨 뒤에 섰다. 여기가 아닌 것 같다. 창구 직원이 무언가 설명해 주려 하지만 중국어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창구를 찾아야 하는데…….     


과연 ‘대륙’이었다. 사람에 치이고 치여 캐리어 끌고는 창구 찾기가 힘들다.

“엄마, 짐 들고 여기에 서 있어. 내가 표 바꿔올게.”

“엇갈리면 어떻게 해?”

“다시 여기로 올 테니까, 여기 그대로 있어. 절대 다른 곳 가지 마!”

진짜 표 바꾸는 창구를 찾으니, 아까 대기했던 한 줄짜리 창구랑은 비교 불가능한 규모다. 수십 개 창구마다 수십 명이 줄을 섰다. 십 분 넘게 줄 서 겨우 실물 표로 바꿨다. 다시 엄마를 찾아갔다. 어디서 내가 찾아올 줄 몰라 좌우만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대는 우리 엄마. 엄마 잃은 아이 눈빛 같다. 지금 엄마와 아이가 반대 처지긴 하지만.      


여러 번 X-ray로 짐 검사를 하고 공항 보안검색대 마냥 금속탐지기로 몸을 샅샅이 훑었다. 마지막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는 역사 직원들. 둘러멘 손가방 검사까지 열어 의심스러운 물건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고서야 우리를 기차역 내로 들여보내 줬다. 표 바꾸고 역 안으로 입성하는 데만 한 시간가량 걸렸다. 선글라스로 시선 감춘 무장 군인이 곳곳에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오가는 사람을 스캔하는 중이다. 쿤밍 역에서 몇 해 전 소수민족의 칼부림 테러가 일어나 경비가 더 엄격했다. 역 안은 의외로 난리 통 같은 바깥과 달리 평온하다. 이른 아침이라면 ‘3시간 전’까지는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나 보다.      


아직 출발 시각까지 한 시간 반이나 남았다. 그제야 배가 고파왔다. 만두, 소시지, 쌀국수 등 간식거리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밥 먹자! 엄마는 뭐 먹을래?”

“엄마는 저기 보이는 왕만두.”

“소시지도 맛있겠다.”

“그럼 엄마도.”

돌판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두툼한 소시지 두 개와 왕만두 두 개를 샀다. 같은 가게에서 까만 타피오카 펄 든 밀크티도 주문했다. 메뉴판 앞에서도 역시 까막눈이니, 그림과 실물을 손가락으로 짚어 주문하는 수밖에 없다. 한 손으로 메뉴를 가리키며 다른 손으로 브이 자(V)를 단호하게 내밀면, 대충 ‘이거 2개 주세요’로 알아듣는 듯했다.      

한 입 베어 물어보니 만두라고 생각한 음식은 호박 소 든 찐빵에 가까웠고 소시지는 흔히 먹던 소시지보다 ‘중국 맛’이 느껴졌다. 양꼬치 소스와 닮은 빨간 양념 팍팍 쳐서 내밀었더니 다행히 엄마도 그리 거부반응 보이진 않는다. 타피오카 펄이 든 밀크티도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밀크티가 맞기는 하는데, 한입 쭉 빨대로 마시니, 삶은 팥 알갱이가 딸려 올라왔다. 밀크티라면 당연히 쫀득한 타피오카 펄 든 것만 알았는데……. 현지 옵션은 조금 더 다양한 모양이다. 아침이라 팥 든 밀크티도 나쁘지 않았다. 쫀득거리는 타피오카 알갱이보다 삶은 팥이 속은 더 편안했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으로 고른 괜찮은 메뉴였다.     

 

정말 괴로웠던 세 시간.

일반 기차로 8시간 걸릴 거리를 3시간 만에 주파한다는 고속철에 올랐다. 기술은 선진국이지만 사람들 인식은 그렇지 못했다. 혹은 우리가 운이 좋지 못했던 것일 수도. 우리 좌석 뒤로 여행 떠나는 대가족이 앉았다. 기차 칸이 떠나가라 노래를 불러대는 중국 아이들 탓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아무도 아이 떠드는 소리를 제지하지 않았다. 참다 참다 번역기를 켜 ‘조용히 시켜달라’고 적어 내밀었다. 한 3분 정도 평화가 유지되었나? 다시 달리는 노래방이 시작되었다. 최신 기차 타는 동안 중국 최신 동요란 동요는 다 들은 기분이다.      


리장 역에 내리고서야 ‘중국 동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리장 역 출입문 근처에는 ‘빵차’라는 독특한 교통수단이 많다. 인당 10위안만 내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훌륭한 승합차 합승 시스템. 우리를 보자마자 빵차 기사가 ‘리장 고성’을 외친다. 

‘그렇지, 여행객이 어디를 가겠어! 아저씨 나이스 캐치!’

나도 잘 알아듣는 척, ‘하오하오’를 외치며 승합차에 올라탔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아름답다는 운남성 대표 관광지 리장 고성. 그 속을 샅샅이 구경하고 싶어 고성 내부 호텔을 예약했다. 다만, 고성 안 내부는 초행자라면 길 찾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다고 했다. 숙소 예약 사이트 ‘찾아오는 길 설명’은 ‘고성 남문 앞에서 숙소로 연락하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자신만만했다. 그럴 줄 알고 ‘위챗’이라는 중국 메신저도 다운로드 받아왔는걸! 위챗으로 숙소주인에게 연락하면 우리를 마중 나올 테고, 숙소까지 쉽게 따라갈 수 있겠지!     


리장 고성이 가까워져 오는데, 숙소가 바쁜지 위챗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내가 산 유심은 인터넷 전용이라 전화는 걸 수 없다. 또 이 짐을 끌고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헤맬까 봐 초조해졌다. 

‘숙소로 직접 전화 걸고 싶은데…….’

옆에 앉은 젊은 현지인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다행히 영어가 조금 통한다. 역시 젊은 사람은 다른가! 그 청년이 본인 전화기로 숙소에 전화를 걸어줬다. 하지만 청년도 이곳 지리를 잘 모르는지 설명이 막힌다. 앞에서 차 몰던 기사 아저씨가 본인에게 수화기를 넘기라고 야단법석이다. 맨 뒤였던 우리 자리에서 승객 손과 손을 거쳐 기사 아저씨에게까지 휴대전화를 넘겼다. 시끌시끌한 말투로 아저씨가 숙소주인과 통화를 한다. 아마 중국말 못 알아듣는 우리 빼고는 빵차 안 모든 사람이 대화 내용을 파악했으리라. 청년이 기사 아저씨가 숙소주인과 대화를 끝냈다고, 내려주는 곳으로 숙소 사람들이 데리러 나올 거라고 말했다. 승합차에서 내릴 때 봇짐 안고 가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도, 우릴 도와준 청년도 같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엄마와 나는 큰 소리로 ‘씨에 씨에(감사합니다)’를 외쳤고 나는 하나 더 아는 ‘짜이 찌엔(나중에 또 봐요)’까지 외쳤다.      


고도가 높은 리장으로 왔더니 확실히 서늘하다. 한여름인데도 우리나라 가을 같다. 무척 친절한 숙소주인에게서 리장 고성 볼거리 설명을 들었다. 진정한 관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오늘은 발 닫는 대로 미로 같은 고성 안을 탐험하고, 점심 먹고, 커피도 사 마실 것이다. 아직 중국에 대해 모르겠다. 중국에 관해서도, 중국인에 대해서도, 중국말에 대해서도 잘 모른 채, 리장까지 얼렁뚱땅 굴러왔다. 짧은 시간 알아낸 점은 중국이 진짜 규모로 ‘대국’이 맞다는 점, 사람들은 몹시 무뚝뚝해 보이지만 막상 말을 걸면 친절하다는 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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