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외워서 될까...?
아침 일찍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엄마도 한 번 와봤다고, 공항 자동문을 통과하는 발걸음이 예전보다는 씩씩했다. 이번에는 중국 동방항공을 탄다. 불친절하다는 평도 많지만, 항상 나를 최저가에 먼 곳으로 데려다주던 효자 같은 항공사라 정이 들었다.
저렴하지만 분류상 ‘저가 항공’은 아니라 기내식도 제공한다. 기내식 반찬을 감은 랩을 벗기고 메인 음식을 싼 은박지를 벗겼다. 엄마가 중국식 덮밥에서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 냄새를 맡아버렸다.
‘기내식은 향신료를 최소로 쓰고 만드는 음식인데, 여기서부터 잘 못 먹으면 어떻게 하지……. 반찬을 넉넉하게 챙겨오기를 잘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얼마나 쉬었는지 모른다.
나 역시 중국 여행이 처음이라 내심 긴장했다. 공항만 벗어나면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사실일까? 그렇다면 고생길이 훤한데…….
“엄마 따라 해. 이! 얼! 싼! 쓰!”
“그게 뭔데?”
“숫자야. 중국어 숫자 일이삼사. 이 정도는 외우고 가야지.”
“이얼..싼...쓰”
“그다음에 니하오는 알지?”
“그건 알지. 얘네 안녕하세요 아니야?”
“맞아. 고맙습니다는 뭐게?”
“그건 모르겠는데?”
“씨에 씨에 잖아.”
“그래그래, 들어본 것도 같다.”
중국어 공부를 빙자한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쿤밍까지 날아갔다.
집에서 새벽같이 출발했는데도 상하이 환승을 거쳐 쿤밍 공항에 내리니 어둑어둑한 밤이다. 새로운 도시에 캄캄한 장막까지 환경.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일은 늘 긴장된다. 미리 받아둔 비자와 여권을 꺼내고 중화 인민 공화국에 전혀 악의가 없음을 만면으로 내비쳐 차가운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
오늘 할 일은 ‘숙소까지 무사히 가기’. 출구로 나가면 공항버스 파는 부스가 있다고 했다. 그 부스에 가서 ‘쿤밍짠(쿤밍 역)’이라고 외치고 ‘얼(2)’을 외칠 것이다. ‘쿤밍짠, 쿤밍짠, 쿤밍짠’을 머리와 입으로 되뇌며 티켓 판매소를 찾았다. 그리 어렵지 않게 판매소에 다다라 단 두 단어로 티켓 2장을 요구했다. 수많은 외국인과 소통 경험이 있는 판매원은 다행히 한국인 의중도 곧바로 이해해냈다.
“씨에 씨에! (고맙습니다!)”
총 세 단어로 표 사는데에 성공했다.
버스에 올랐다. 시내로 향하는 관문부터 관광객 눈과 귀를 사로잡고 싶나 보다. 버스 안에서 안내원이 끝도 없이 쿤밍 자랑을 펼친다. 오직 중국어로만 해서 문제지만……. 뭔가 쿤밍의 볼거리와 장점을 소개하는 느낌이다. 엄마는 내가 중국어도 대충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뭐라는 거야?”
“몰라 나도. 나 중국어 하나도 몰라.”
“아까 말 잘하더니만.”
“그건…. 중국어라고 할 수 없어…….”
어쩌지. 엄마는 딸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진정으로 믿는 모양이다.
쿤밍 역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서 숙소로 걸었다. 드디어, 기나긴 이동을 마치고 침대에 풍덩 몸을 던질 수 있으리라. 시설은 깨끗하고, 프런트 직원은 친절하겠지! 왜냐면 난 ‘관광호텔’을 예약했으니까!
어쩜 이럴 수가. 이름부터 관광호텔인 그 숙소 프런트에는 두 명의 직원이 앉아있었으나, 누구도 영어를 할 수 없었다. 여행지에서 다짜고짜 ‘자기 언어’ 요구하는 것만큼 안하무인인 짓이 없는 걸 안다. 하지만, 여기는 ‘관광호텔’이잖아…? 중국인처럼 생긴 모녀가 와서 중국말을 하나도 못 하니 그쪽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전혀 소통할 수 없어 인터넷을 켜 예약 내용을 내밀었다. 예약 번호와 확정되었다는 메시지가 있는 페이지를 건네받고도 두 직원이 눈만 껌뻑인다.
‘본인들이 부킹 닷컴에 올려놓은 거 아니야…?’
이것 참. 미치겠네. 나름의 전산을 투덕거려 체크인하는 데 이십 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