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이 수선비도 깎아주고 기차표도 사주는 날이 있다?
오늘은 야간 버스를 타고 고아로 이동하는 날. 이런 날은 시간 분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틀간 잘 지냈던 (감옥과 닮은...) 호텔에 인사를 체크아웃하며 인사를 고했다. 관찰한 바로는 여기는 가족이 하는 느낌이었는데, 전반적인 운영을 맡은 손자는 젊어 말이 참 잘 통했고 버스 예약 앱을 같이 살펴봐주는 등 여행자를 많이 도와주려 했다. (이 친구 때문에 남인도에 대한 초반 이미지가 대폭 호감 상승되었다.)
체크아웃 하겠다고 키를 건네니 사장 격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도 내게 여행 팁을 하나 주겠다고 말을 보탠다.
“언제나 여행할 때는 숙소를 1박만 예약해.”
“왜요?”
“너는 지금 아고다에 너무 많은 수수료를 지불했어.”
“이 방이 제가 바로 돈을 내면 얼마인데요?”
“800루피라고.”
그렇구나. 나는 거의 1박에 1300루피를 냈는데... 할아버지의 솔직한 조언 덕분에 다음 숙소는 1박만 예약했다. 땡스 할아버지...
짐을 맡기고 오늘 마지막으로 뭄바이를 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나는 이제 뭄바이에서 택시를 탈 생각이 전혀 없다.^^ 어디든 5-6루피만 내면 (100원 미만) 향할 수 있는 버스 타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뭄바이는 의외로 ‘먹는 재미’가 있다. 인도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답게 식문화도 발달된 편이다. 첫날에 만난 인도 친구들이 다음 날에 160$짜리 퓨전 아시안 코스 요리를 먹으러 가자고 했을 정도. 160$라니. 여행 초반이라 한 끼에 20만 원이 넘는 식사를 먹기는 부담되어 사양하긴 했지만, 그만큼 뭄바이는 저렴한 곳부터 대단한 곳까지 식당의 수준이 상당히 다양했다.
첫날 갔던 Kyani & co의 구글 리뷰에서 Jimmy Boy의 페르시 음식이 유명하다고 봐서 오늘은 여기서 아점을 먹을 생각이다. Jimmy Boy는 Kyani & co보다 가격대가 조금 나가는 가게라 그런지 내부가 예상보다 훨씬 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인도 젊은 여자들도 여기서 디저트를 여럿 시켜 SNS용(?) 사진을 수십 장 찍고 있는 걸 보니, 내가 맛집을 찾아온 게 맞구나 싶었다.
슬쩍 보니 커피머신도 보여서 따듯한 카푸치노를 시켜보았고, 밥으로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치즈 오믈렛이 들어간 크루아상을 시켰다. 주문 후에 옆 테이블 아줌마가 이 집에서는 페르시안-인도 스타일 Pav(빵)와 찍어 먹을 무언가가 가장 유명하다고 말해주었다...
다행히 Jimmy Boys는 페르시 식품뿐만 아니라 이러한 서양 음식(?)도 괜찮았다. 하지만 넘칠 만큼 느끼하고 고소한 치즈 오믈렛이 들어간 크루아상을 먹으니 또 Pav(빵)를 먹을 생각이 싹 달아났달까... 여기서 평온하고 즐거운 오전 느낌을 즐기다가 본격 구경을 위해 출발했다. 오늘은 뭄바이 관광의 중심지인 게이트 오브 인디아 주변을 다시 한번 도보로 걸으며 구경해 볼 생각이다.
관광 3일차만에 인도 물가에 적응해가는 느낌이 든다. 첫날에는 50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거침없이 사 먹었으나 이제 보니 현지 물가에 비해 너무 과하다.
걷는 길에 Chhatrapati Shivaji Maharaj Vastu Sangrahalaya 역사 박물관을 지나기에 들어가 볼까 하다가 외국인 입장료가 700루피라(만천 원)... 포기했다. 그렇지... 언제부터 인도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지만 입구의 기울어진 부다 조형물은 한번 구경하고 가려고 입구만 슬쩍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더니, 또 이 혼자 사진 찍는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한다.
기울어진 불두상을 관람할 여유 같은 건, 아이들의 기운에 밀려 사라졌다.
돌아 나와 또 걷는 길에 벽을 따라 그림을 많이 판다. 알고 보니 제향가르 아트 갤러리가 바로 옆. 이곳 역시 이름만 들어본 곳인데, 역사박물관도 안 들어가 본 판에 제향가르 갤러리에 들어갈 리가 없다. 무명 예술가들이 직접 그린 수준 높은 그림을 걸으며 감상하는 것만으로 만족. 젊은 예술가들의 거리 전시가 도시에 생기를 더하는 느낌을 받았다.
점심시간이 지나니 또 너무 덥다. 선크림도 기능 못하는 느낌이 든다. 나도 모르게 무슬림처럼 어제 50루피에 산 스카프를 얼굴에 두르게 된다. 게이트 오브 인디아에 겨우 당도해 둘러보고 있으니, 이 꼴임에도 또 사진 찍어 달라는 이야기가 많아서 놀랐다. 역시 인도 여행은 자존감 치료기랄까.
게이트 오브 인디아 – 타지마할 호텔 – 콜라바 마켓 루트로 다시 한번 이 뭄바이 관광 정통 코스(?)를 구경하고 버스로 다시 크라포드 마켓 근처로 돌아왔다.
오늘 이 꾸르티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 어제 야시장에서 옷을 고르다 보니 큰 실수가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입을 ‘원피스’를 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옆이 완전히 터진 ‘길이 긴 상의’를 산 것! 어휴 그럼 그렇지.
수선을 뭐라고 말하는 지도 몰라서, 바디 랭기지로 미싱질 하는 흉내를 내니 ‘테일러’라는 단어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크라포드 마켓 내에서 ‘테일러? 테일러~?’를 외치는 외국인. 나다...
동대문 시장 뺨치는 미로 같은 상가 내부를 뒤지다가 겨우 수선집을 찾았다만. 옆트임을 드르륵 박는 데 200루피를 달래서 또 흥정을 했다. 어제 이 원피스를 300루피 주고 샀다고 호소하여 100루피에 수선비 협의. 알고 보니 이 집은 인도 여성이 입는 고급 사리에 수놓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로 한 벌을 만드는 데 우리 돈 2-3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5000원짜리 옷을 사 와서 수선해달라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뭐 어쨌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슬픈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다.
어제 최 씨에게 영감을 받아 나도 이번 여행 영상을 찍어보기로 마음먹었기에, 이 시장 안에서 셀카봉도 수색해야 했다. 그 흔한 셀카봉이 왜 이렇게 안 보이는지.... 겨우겨우 한 휴대전화 가게를 찾아서 셀카봉 겸 삼각대도 280루피 주고 샀다. 이번 여행에서 참으로 유용하게 썼는데 딱 여행을 마치는 날에 삼각대 부분이 망가졌다. 셀카봉을 팔던 가게 주인이 이번 여행에 행운을 빌어줬었는데. 그 기도 덕이었는지 아주 혹사 시켰음에도 메이드 인 차이나 셀카봉은 한 달을 잘 버텨주었다.
이제는 야간 버스 타러 약속된 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야간 버스 출발 시간은 7시. 뭄바이는 천만 대 도시라 퇴근 시간에 걸려버리면 길이 너무 막히기 때문에 퇴근 시간이 되기 전에 도착하려 서둘렀다. 나름 정들었던 감옥 같은 숙소에 가서 짐을 찾고, 나는 이제 뭄바이 버스 마스터니까 또 버스를 타러 서둘러 정류장으로 갔다.
그런데, 구글맵에서 알려준 버스 번호를 믿고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현지인들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니 여기엔 그 버스가 안 온다고 한다...? 야간버스 출발시간까지 2시간 정도 남았는데
택시를 타야 하나 어쩌나 생각하고 있으니, 현지인들끼리 난리가 났다. 내가 버스를 탈 Sion travel petal까지 가는 길을 한 5명의 시민이 논의하는 중이다.
그때 갑자기 한 청년이 자신을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거기까지 가는 데는 기차가 훨씬 빠르고 낫다면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길을 앞장섰다.
‘나 오늘 납치되는 거 아냐?’
5%의 의심이 들었지만 큰길로 따라가다가 대낮이므로 별일 있으면 바로 튀겠다는 각오로 그를 따라갔다. 한 10분 정도 열심히 걸었을까. 첫날에 왔던 CST 기차역에 도착.
‘진짜잖아...?’
CST 기차역은 역시나 너무 컸다. 수많은 기차가 서 있어서, 만약 혼자 왔다면 어떤 기차를 타야 할지 파악하는 데만 한참은 걸렸을 것 같다. 나를 기차역까지 데리고 온 이 친구가 10루피짜리 기차표까지 사서 내게 줬다. 그리고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Sion으로 향하는 도시철도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꼼꼼히 도와주는 인도 사람이라니.
누가 인도에 사기꾼이 많다고 했지? (북인도엔 많음..!)
뭄바이를 여행하는 동안 도와주려는 인도인을 참 많이 만났다. 첫날 카페 투어를 함께해 준 친구들, 버스 앱 예약 방법을 같이 봐주던 숙소 주인, 10분을 걸어 지하철 표까지 사서 손에 들려주는 친구. 나는 한국에서 마주친 외국인에게 한 번이라도 이런 작은 호의를 베푼 적이 있는지 반성이 될 지경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토의 결과처럼 이 시간엔 도시철도가 더 빨랐다. 20여 분 만에 Sion 역에 내려 탑승지점인 여행사까지 무사히 도착.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허술한 내 여행이 꼼꼼히 진행된다.
여행사에 눈도장을 찍고 탑승 포인트까지 확인한 뒤에 할 일은? 오늘의 저녁 사기. 여행사 맞은편에 꽤 깔끔해 보이는 피자집이 있더라고. 버스 타는 동안 배탈이라도 나면 큰일이기에, 오늘 밤은 반드시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피자헛처럼 여러 종류의 파지를 파는 현지 프랜차이즈에서 150루피짜리 파니르(치즈) 마살라 피자 1인용을 샀다. 한국 고추보다 더 매콤한 고추가 토핑 사이에 쏙쏙 박혀 우리 입맛에 잘 맞던 그 피자를 저녁으로 먹으며, 작고 흔들리는 슬리핑 버스에 실려 고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