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감사함에 대하여

볕드는 심리상담실

by 하계의 이난나



치료자가 고도로 훈련되었더라도
공감 가운데 긍휼(矜恤; 자비심)을 갖추지 못했다면
위험할 수 있다

- Nancy Mc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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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좀 덜해졌는데,제가 한동안 참 고마워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자다가 깨어 화장실에 갈 때 스위치를 누르면 전깃불이 탁! 환하게 켜지는 거예요.


그리고 볼일을 마치고서 손을 씻으려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쏴아! 하고 나오는 순간 저는 절로 '고마워라'하는 심정이 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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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가 논밭 한가운데 작은 마을에 전깃불이 안 들어왔었고 물은 마당 한가운데 있는 우물에서 퍼서 썼던 어린 시절의 경험 덕일까요?


어둠 속에 순간 빛이 환해지고 손 씻을 물이 쏴아-하고 쉽게 쏟아지면 참말이지 고마운 마음.


이런 제가 상담자 단톡에서 흥미로운 연구 제목을 발견!(호기심 충만할 나이인 나ㅎ) 했어요.


간단한 조사 문항에 체크를 했더니, 연구자께서 연락을 해주셨는데 주제는 <감사함이 상담자의 삶과 상담에 미치는 영향> 이었어요.


ZOOM으로 두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삼 나의 삶에서 고마운 것들과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이 개인적인 삶과 상담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고맙게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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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의식 개발 코스 중 상위 코스를 경험하기 위해 처음 미국을 다녀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요.


그전에 꾸준히 받았던 상담 덕에 살아내느라 이리저리 왜곡되었던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정리되어 마음방이 차분해진 느낌인 시기였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는 이런저런 삶의 이슈를 많이 다룬 것 같았고 상담자로 공부하고 수련하는 출발선에 있는 자신의 모습도 그럴듯한데,


그런데도 여전히 삶의 근심이나 걱정은 '불안'이라는 먹구름으로 늘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아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들이고도 '나는 안 되나? 나는 더 좋아지지는 못하나'하고 마음이 무거우면서 한편으론 조급하기도 했어요.


어느 날 근무하던 상담 센터에 당시 그 코스에서 저를 도와주시던 분이 방문하셨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감사함을 잃어버리면 모든 게 이어서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라고 하셨어요.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그 후로도 살면서 오랫동안, 고마움보다는 원망을 받아들임보다 탓하기를 더 많이 했지만 그러나 마음 한편엔 늘 고마움이 작은 불씨처럼 남아있었던가 봐요.


마치, 꺼져있지만 언제든 스위치를 누르면 켜지는 한밤중 전깃불과 수돗물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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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곁길로 새자면요,

저는 상담실에 온 사람들 중 다수에게 힘겨운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또는 책이나 유튜브를 통해 찾은, '어떻게 하면 좋아지더라'라는 방법으로 애써온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노력들이 어느 정도는 자신을 지탱하고 힘듦을 견딜 수 있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힘겨울 때는 숨쉬기도 버거운 법이라, 감사일기를 쓰거나 긍정적인 확언으로 자신을 일깨우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처럼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무언가를 더 해야' 하는 것은 결국 무거운 짐이 되고 강박적으로 자신을 다그치게 되거나, 때론 이도 저도 못하는 상태로 곤두박질치게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억지 긍정''강제적 감사'라고 여기는 편입니다.


믿을 데가 오직 자신 하나뿐인 사람의 삶, 그 앞을 가로막는 수많은 난관들을 "할 수 있어!" "웃어넘겨!" "자기 확신을 가져!"하고 떠미는 건 속 모르는 짓이라고, 때로는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런 점에서 한때는 각종 자기개발서를 읽는 것이, 한때는 자존감을 향상하기 위해 각종 힐링 코드를 찾아보고 워라밸 라이프를 추구하는 것이, 또는 긍정하기와 감사하기와 선한 영향력을 가지려고 의지를 내는 것조차 그저 우리 사회에서 '트렌디한 자기관리의 아이콘'으로 지나가는 유행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걸 따르지 못하거나 꾸준히 못하는 모습보다 그런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는 마음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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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프레드 비욘은 "강박적인 사회에서, 강박적인 개인은 종교를 갖게 되면 기도조차도 '하지 않으면 느끼게 될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하게 된다." 라고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제가 만난 신앙인 중에도, 쉬지 말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이 너무 기도를 안 한 게 아닌가 강박적으로 검토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는듯 합니다.


마찬가지로 절박한 사람이 자기개발과 관리에 이어 감사라는 종교, 긍정이라는 종교를 갖게 되면 이 또한 조급하게 '해야 한다'가 되지요.


끊임없는 노력은 어느 정도 성취와 결과를 낼 수 있게 해주지만, 걷다가 넘어진 사람은 무릎이 까지고 뛰다가 넘어진 사람은 바닥을 구르며 다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너무 애쓰는 모든 것은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갈 때에는, 그런 조급하고 애쓰느라 지친 자신의 마음을 먼저 돌보아야 그다음 노력을 더 할 수 있고, 결실도 바람직하게 맺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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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비마다 결국 내가 자신을 돌보고 내가 나 자신의 편이 되어, 스스로 좌절로부터 일어나 필요한 노력을 더 해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그래서 어려움을 넘어 배워낼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고마운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은 상담실에서 저를 오랫동안 돌봐주신 선생님, 마음과 의식을 일깨워준 스승과 동료들, 그리고 저에게 자기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한동안, 자신에게 유익한 관계를 새롭게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역할을 맡겨주신 내담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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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어린 날 캄캄한 밤이면 툇마루에 앉아 멀리 지나가는 기차 불빛을 보며 무언가를 그리워하곤 했어요.


그 그리워하던 것이 언젠가, 어디선가 '행복'이라는 얼굴로 나타나줄 거라 기다렸지만 그건 결국, 내 안에 '감사함'이라는 마음으로 늘 있었다는 걸 여러분의 도움 덕에 이제는 알겠습니다.






삶의 모든 경험들은 그 의미를 따라 왔다가 지나가지만, 애쓰고 저항하고 매달리는 만큼 고통은 길어지고 바라는 바를 이루기는 어려워지는듯해요.


그러니 마음 깊은 곳, 본래 우리에게 있는 바로 그것인 '감사함'에 주파수를 맞출 수 있도록 자신을 돌보아 주세요.


그러면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자기자비사랑이 자연스레 자신 안에서 일어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연구로 기여하시는 동료 선생님 덕에 모처럼 저의 몸과 마음에 스며있는 감사함을 새삼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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