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짤지도 몰라

죽음을 품은 삶 : 사실은 매울지도

by 하계의 이난나


어느 날 침경이 "제가 잘 봤는데 어쩐지 주희샘 생각이 났어요", 하며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권했다.

침경은 철학을 전공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융 그룹 꿈투사모임을 진행하는 사람이다.


그로부터 일 년 뒤 폐암진단을 받았다.

평생 밥 안치고 설거지는 해도 반찬 만드는 건 큰일이라도 날듯 꺼리던 남편은 화들짝 해서는 드라마 속 한석규처럼 반찬을 열심히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짜고, 어느 날은 간이 전혀 안되어있고 어느 날은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어느 날은 대체 이게 음식인 건가, 싶은 희한한 걸 내밀다가 어쩌다 한 번씩 맵다.


그래도 고맙게 먹게 되고, 차린 밥상을 받을 때마다 감개가 다 무량하다.


image.jpg


다른 모든 행위와 마찬가지로 요리하는 일도, 그 사람의 성격이 고스란히 배여 나온다.


남편은 매우 꼼꼼한 성격인데, 자기가 해보고 싶은 요리는 레시피를 뒤져서 메모를 한 다음 온갖 재료를 다 장을 봐온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정성 들여 요리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즉 맛을 내야 하는 순간에는 자기 마음대로 뭔가를 넣는다.

언젠가, 들깨 배추된장국을 하다가 맛이 심심한 듯하다고 오미자 식초를(!) 넣어서 그 맛에 기겁을 했었다.


무슨 일에든 신중하지만 결정적인 때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자기식으로 결론 내버리는 평소 모습과 똑같다.




요리는 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관계성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어느 날 아침에는 내가 요가를 하는 동안 남편이 내가 며칠 동안 먹고 싶다 했던 누룽지를 끓여주겠다고 하더니 세상에나 그걸 홀랑 태워버렸다.

남편은 비염이 있어 냄새를 잘못 맡는지라 그만 누룽지가 타는 걸 몰랐던 거다.

그런데, 그 누룽지가 타는 동안 평소 냄새라면 개코소리를 듣는 나도 요가에 집중하느라 냄새나는지도 몰랐다가 먹고 싶었던 누룽지가 다 탄 걸 알고는, 서러움에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결혼생활 내내, 일하며 아이들 함께 키우건만 나도 집에 오면 누군가 차려준 밥 좀 먹고 싶다고, 그러니 밥 좀 같이 하면 안 되냐고 그렇게 하소연을 해도 안 듣던 남자가, 아내가 죽게 생겼다고 그제야 부랴부랴 밥을 하면서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누룽지, 그렇게 먹고 싶어 한 누룽지를 태워버리냐고.

내가 운동을 하던 자세 그대로 엎드려 엉엉 울자 남편이 뒤에 와서 "밥 태워서 그래?" 하고 달랜다.

나는 더 서러움이 북받쳐서 어흐엉엉, 펑펑 울고.


BBSIMAGE_20221204100740_ad182a2097afbb7a430fbc8e7a7fbc0e.jpg


침경이 직관이 뛰어난 사람인건 짐작했지만 이렇게 우리 부부를 들여다보는듯한 드라마를 보며 나를 떠올리고, 암을 치료하며 우리가 겪는 지금의 경험을 예견한 듯 선물할 줄이야, 싶다.


어쨌거나 남편도 드라마를 쇼츠로 후다닥 보고는, 얼마 전부터는 요리를 제대로 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간도 얼추 맞고, 어느 날은 참 맛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나라면 시도도 안 해볼 제대로 된 요리, 말하자면 가지전 같은 걸 내놓기도 한다.

양평텃밭에서 무시로 커가는 가지들을 따다가 주야장천 무치기만 하는 내가 안타까웠던지, 가지전 레시피를 찾아서 하자기에 둘이서 해봤더니 꽤 맛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살림살이 30년 만인 며칠 전에 계란찜을 처음 성공해 본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밥을 얻어먹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남편이 진즉 요리를 시작했으면 우리 집은 훨씬 화목하고, 나도 건강하고, 행복했을 듯 하지만 다 지나간 일이고, 이제라도 남편이 한 음식을 심시세끼 얻어먹게 되어 그저 신이 날 따름이다.




먹고사는 행위,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낮은 차원에서 고집스럽고 끈질긴 패턴을 가졌던 우리 부부의 관계성은 그 관성만큼 오래 버티다가 내 몸에 자리 잡은 암덩어리 덕에 한방에 깨졌다.


한 사람에게 있어 생존차원에 가장 가까운 일-먹고사는 일은 삶의 모든 면의 바탕과 기본이 된다는 게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바이지만, 어쩌면 나는 그 생존에 목을 매면서도 언뜻언뜻 가본 초월의 세계가 나의 세계인줄 알았었던 것 같다.


사실은 가장 밑바닥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이 정도면 잘 사는 거지, 하고 외면하던 남편과의 관계성을 몸이 무너지고서야 제대로 마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피할 수 없어서 똑바로 보면서 맞짱 뜨고, 버티며 밥을 얻어먹는 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시 감사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