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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담다 Feb 12. 2023

하우스푸어에서 빚더미로 앉은 어느 날


'나는 돈을 진짜 미치도록 벌고 싶었다.'


작년 여름 내 친구가 초밥 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 말이다. 이 말은 친구의 바람뿐이 아니란 걸 난 알고 있다. 요즘 인스타나 블로그 SNS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이다. 물론 내가 하우스 푸어가 된 배경이기도 하다.     

친구는 부자다. 남편도 의사다. 집도 두 채나 된다. 오피스텔도 두 채다. 오피스텔에서 받는 월 세는 내 남편이 받았던 초봉과도 같다. 그럼에도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했던 말이다.

"돈" "부자"는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의 '욕망'이 되었다. 이 말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은 요즘 유튜브를 보면 알 수 있다.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겠다고 허황된 꿈을 꾸었다. 그 덕에 빚더미란 시궁창에 빠져 한참을 나뒹굴었다. 하우스 푸어로 떠밀려 길바닥에 앉았다.     

2015년 9월 신문에는 대문짝만 하게 '하우스 푸어' 이야기뿐이었다. 무리하게 빚지며 아파트 갈아타기를 했다. 대출을 받기 전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계획은 있는가?’이다. 계획도 없이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을 사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무렵 아파트 전세는 2억에서 2억 5천 정도였다. 3억 6천의 아파트를 팔고 5억 8천에 32평 같은 평형을 샀다. 아파트를 갈아타며 생긴 차액은 여기저기 대출로 메꾸었다. 핑계는 좋았다. 아픈 아이를 위한다며 학교와 가까운 아파트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핑계를 대었다. 어리석었다. 한심한 인간이었다.

그때 판교아파트시세도 5억 초반이었다. 분양을 받으며 대출을 3억 6천을 받은 친구도 이자만 280만 원씩 내기 버거워 아파트를 팔아버렸다.


내 안의 욕망이 이 엄청난 일을 꾸며 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깊은 한숨만 내쉬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집을 팔기로 했다. 손해를 만회하는 방법은 없었다.     

분당의 집을 팔고 친구가 있는 천안으로 가기로 했다. 먼저 내려간 친구는 여유로워 보였다. 일단 집값이 싸기 때문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집을 팔면 몇 천만 원만 내 손에 쥐 어 진다. 그러나 모든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집을 파는 것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었다.     


시어머님은 아들 사랑이 남다른 분이시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시어머니의 목멘 소리는 나를 또다시 주저앉게 했다. 아들을 자주 못 본다는 것이 많이 힘드셨나 보다. 엉엉 울면서 우리를 붙잡았다. 내가 더 힘든 상황인데... 어머니의 눈물에 양보했다. 명심하자! 내가 먼저 바로 서야 한다. 그래야 그다음이 있다. 

    

이사하는 것은 포기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남편 월급은 200만 원이다. 우리가 진 빚의 이자는 120만 원. 혼자서 걷지 못하는 큰아이 병원비는 한 달에 60만 원이다 하우스 푸어의 생활에 우리 가족은 길바닥에 내려앉을 상황이었다. 8년 전 하우스 푸어가 된 배경에는 높은 이자 율이 한몫했다. 지금의 현상과 매우 닮았다. 온통 모든 뉴스에서는 높은 아파트 담보 대출 이자에 관한 내용이다. “내년엔 더 힘들어진다. 지금 시작에 불과하다.”는 등의 이런 암울한 이야기로 시끄럽다. 

    

휘둘리지 않고 힘든 인생길을 헤쳐 나가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다. 무리하지 말고 나의 인생을 차곡차곡 만들어 가면 된다. 그러기 위해,내가 힘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고 지금까지는 아주 엄청난 일을 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책에는 내 안의 문제를 해결해 줄 답안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안 다. 책은 마술사다.     

그리고, 그 마술사와 같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하나씩 실행해 가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실행은 하우스 푸어와 같은 슬픈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모두 가 그런 슬픈 이야기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책을 쓰고 있다. 읽기만 하던 것에서 ‘책 쓰기를 하고 싶다.’라는 열망으로 실행하 고 있다. 생각만 하고 실행은 완성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꼭 완성하고 싶다.    


내가 겪었던 하우스 푸어의 힘들었던 기억은 내 삶의 나침판이 될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참고서처럼 활용할 것 같다.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던 2022 년. 영끌로 집을 샀던 2030 세대들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지금은 일단 몸을 최대한 납작하게 엎드려 절약하며 버텨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봄이 온다. 내가 겪었기에 말할 수 있다. 꽃 피는 봄이 올 때까지 우리 다 같이 기다려 보기로 하자.     

봄이 오면 행복했던 순간이 다시 오리라 믿는다. 10년 전 크루즈여행의 행복했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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