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만나보고 싶어졌어요. 01

마음이 물밀듯이 내게 밀려오던 그날.

by 으네다

그러니까, 불현듯 냉장고 문을 열다가 그날이 떠올랐다.

' 당신과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우리가 사귀게 되었던 그날'이 말이다. 냉장고에는 그날을 떠올릴만한 어떤 단서도 없었다. 단지 목이 말랐고, 물통을 꺼내려 했던 행동이 전부였다.


그런데 왜,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아득하게 쌓아둔 기억이 톡하고 튀어오르는 순간이.


2015년 7월 4일 토요일.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책 사인회가 있는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선약이 있었다. 그 주말이 오기 전 어느 날 밤, 당신과 양재천을 거닐면서 나는 그 작가의 이야기를 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돌아온지 반년, 여행을 가기 전과 후에도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그 작가의 신간이 발표되었고, 쑥스럽지만 사인회에 가볼까 싶다고. 그런데 약속이 있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 이야기를 하던 날 밤은 선명하지는 않지만, 적당하게 그려볼 정도의 기억으로 담고 있다.

그렇게 덥지 않았던 느낌, 양재천의 산책로를 거닐던 사람들의 실루엣, 당신과 함께 들었던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


당신은 내게 말했다. '그날 종로에서 결혼식이 있어요. 결혼식 끝나고 줄을 서고 있을테니, 올 수 있겠어요? ' 나는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약속은 소개팅 주선이었고, 나는 서로 인사만 시켜주면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매봉역에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얼마나 걸리더라? 음, 갈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답이 나왔다.

나는 당신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우리는 그날 만나기로 했다.


광화문역에서 교보문고로 향하던 길이 길고 습하게 느껴졌지만, 너무 늦지 않게 나는 달려갔다. 이미 사둔 작가의 책을 갖고 말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당신은 맨 앞 두 번째로 서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 중에 맨 앞에 두 번째라니. 얼마나 일찍 와 있던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뒤로 가서 줄을 서려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자신이 뒤로 갈테니, 여기에 서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어쩐지 그 자리를 양보 받기 미안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당신을 두고 수십명의 사람들을 지나쳐 줄을 섰다. 그 때 참 마음이 이상했다. 오묘한 마음.


아마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를 위해 기다려준 당신에 대한 감정이 내 마음에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당신은 사인을 받고, 내게로 왔다. 내가 기다리는 줄을 함께 기다려주었다. 그러면서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크림빵이 가득 든 봉지였다.


' 좋아하는 작가님이라면서요. 좋아하는 사람한테 빈손으로 가지 마요. '


미처 나는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않았는데, 당신은 내 손에 빵이 든 봉투를 쥐어주었다. 나는 얼떨떨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런 마음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읽지도 않았던 책을 사고, 사인회에 줄을 서 준 사람. 좋아하는 사람에게 빈 손으로 가지 않도록 무언가를 쥐어주는 사람. 그게 다 나를 향한 마음이라는 걸 아는 순간. 나는 솔직히 그 사인회가 중요치 않았다. 이미 당신의 마음이 밀려와 조금 아득해졌던 것 같다.


나는 작가님한테 그가 건네 준 크림빵을 선물하지 않았다. 선물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가 건네받은 마음이었고. 그걸 다른이에게 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사인을 받을 때 당신은 연신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쑥스럽지만 '저도 아르헨티나에 다녀왔어요.'라는 말을 작가에게 했다. '좋았죠?' 라는 말을 들으며 잠깐의 대화 그리고 사인을 받았다.


그 사인을 받고, 당신과 교보문고를 빠져나오면서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역시 이대로 집에 가기는 아쉬웠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요동치는 이 감정을 그냥 두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게 당신에게도 느껴졌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이건 전적인 나의 시점, 나의 생각이기에.


그날 대기하며 받았던, 일종의 번호표.


우리는 이태원으로 향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커피집으로. 그곳을 소개시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우직한 면이 있는데. 내가 이태원에 가는 이유는 그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너무 유명해졌지만, 그 때는 아는 사람만 알았던 그곳으로. 당신을 데려가고 싶어졌다.


사실 당신과 이태원에서 데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 카페를 소개시켜 주지 않았다. 아직 당신이 내게 낯선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함께 가도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 카페의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비가 올듯 잔뜩 흐린 어느 날, 이태원 역 앞 신호등에서 당신을 기다렸었다.


그래, 그런 날도 있었다. 그런데 왠지 2015년 7월 4일 그날은 당신과 함께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인파가 가득했던 이태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