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만나보고 싶어졌어요 02

누구보다 당신에게 먼저 말하고 싶었어요

by 으네다

복잡한 이태원의 메인 거리를 조금 벗어나 아래로 내려가면, 챔프 커피 제2작업실이 나온다. 그당시에는 그 거리가 한산했다. 중간 중간 피자와 맥주를 파는 가게, 양꼬치집이 보였고. 챔프 커피는 이발소 옆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카페였다. 종종 담배 한갑과 커피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시절이라고 하니 약간은 웃긴 마음이다. 불과 6년전인데.) 남미에서 커피를 공부하던 언니에게 소개 받았던 카페였고, 그 언니가 한국에 돌아와 함께 가며 챔프커피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데. 시그니처 커피인 챔프 커피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좋아하는 친구들을 모두 이태원으로 끌고가며 그 카페에 갔었더랬다.


휴대폰 앨범에 남아있는 사진 중 하나
IMG_8606.jpg 시그니처 커피인 챔프 커피. 그 때는 쿠키도 없었다.


아무튼, 나는 당신을 이 카페로 데리고가기로 마음을 먹고, 당신과 함께 챔프 커피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카페 안은 한산했고, 우리는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좀 전에 사인회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당신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당신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 물었다.


" 작가님한테 사인 받으면서 무슨 말 했어요? "

" 저는 작가님 책을 읽은 적이 없어요. 오늘 이 책도 처음 샀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길래 왔어요."

" .... "


당신은 처음 만날 때부터 그러했지만, 감정에 숨김이 없었다. 솔직한 편이었고, 그 솔직함은 종종 나를 당황 시켰다. 사실 그 후에 작가님이 무어라 말을 했다고 전해줬던 것 같은데, 사실 그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냥 한 번 물어볼까 생각했는데. 어쩐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부끄러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공란으로 남겼다.


우리가 데이트를 할 때, 나는 몇 번이고 당신을 거절해야 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유는 명료했다. 만나면 좋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몇 번의 데이트로 그런 감정이 든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때 참 어렸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마음이 부담스러웠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 몇 번의 양재천 산책과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했을 때 알게 된 에피톤프로젝트의 친퀘테레를 캡쳐해 당신에게 보냈었다. [ 저는 이 노래가 좋은 것 같아요. ] 그 때 당신은 이런 카톡을 보냈었다. [ 저는 은혜씨가 좋아요. ] 그 때 느꼈던 쿵하는 마음.


' 나는 이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


이태원에서 데이트를 하던 어느 날 (챔프커피를 소개시켜 주지 않았던 그 날).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고, 나는 우산이 있었다. 그런데 혹시 당신에게 우산이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아주 오지랖 넓은 염려까지 했었다. 그렇다면 나는 우산을 사줘야겠다 라는 마음을 먹었다. 같은 우산을 쓰기엔 낯선 사람이어서.

그날 당신은 우산이 없었고, 우리는 결국 우산을 같이 썼다. 내가 어정쩡하게 거리를 넓히니 이러면 둘 다 비를 맞는다고 한 마디 했었다. 나는 그 때 좁혀지지 않는 마음의 간극을 느꼈던 것 같다.


당신과의 만나는 시간들이 쌓이고, 내 부담스러움을 눈치채고 조심하던 순간들을 목격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귀기울여 주는 마음을 보며 조금씩 감정이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아마도 내 마음에 방점을 찍어주었던 것 같다. '마음을 준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손쓸 겨를도 없이 밀려드는 것이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어색한 듯, 수줍은 듯 이야기하는 우리를 보며 사장님이 물었다.


" 둘이 사귀는 사이에요? "


자주 카페에 오다보니 일면식이 있었던 사장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만나보고 싶다고 말을 하려 했지만, 그 자리에서 말하지 않았다. 그냥 멋쩍은듯 웃었고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일어났다. 맛있는 원두도 각자 한봉지씩 샀던 것 같다.


카페를 나서며 당신은 내게 물었다. 왜 아무말도 하지 않았냐고, 나는 그냥요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태원역을 지나 리움 미술관 근처로 걸어올라가며 하얏트 호텔이 연결되어 있는 작은 산책로?가 있었다. 그곳은 한적했다. 나는 여기서 당신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벤치도 없는 풀밭에 뭉툭한 말로 잠깐 앉을까요?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손에 든 크림빵 봉지와 원두 봉지를 한켠에 내려놓고 당신과 앉았다. 나는 어디든 잘 앉는 성격이고, 고등학교 시절엔 발이 아프면 신발을 벗어 재낄만큼 그런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긴 했던 것 같다.)


" 당신과 만나보고 싶어요. 아까 사장님한테 말하지 않은 건,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가장 먼저 해야할 것 같아서에요. 저는 연애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연애를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오로지 내편이 되어주는 것,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 때 당신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하는 내 마음이 떨려서 지금 남아있는 건 나의 감정이 더욱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당신은 역시나 솔직했다.


" 제가 은혜씨가 말하는 그런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노력할게요. 고마워요. "


우리는 그날 연애를 시작했다. 3년을 조금 더 만나고 결혼을 했다. 이제 올해 연말이 되면, 3주년의 결혼기념일을 맞이한다. 나는 종종 그 때의 당신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 옆에서 잠이든 당신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사람을 만났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 내가 아는 사람중 가장 좋은 사람. 물론 매순간이 좋았던 건 아니다. 가끔은 서운하고 속상했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그런 감정은 순식간에 휘발되어 날아갔다. 그건 잠깐일 뿐이다. 휘발되지 않고 언제나 묵묵하게 남아있는 건, 진짜 당신의 모습. 언제나 배려하고 생각해주는 그 마음. 작은 것에도 여전히 귀기울여주는 그 모습이다.


나는 종종 우리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퐁당퐁당 써볼 생각이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사진처럼 글로 감정을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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