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

연애의 시작, 시간이 쌓여야 한다.

by 으네다

고백하자면, 당신과의 연애는 스물다섯 내게 거의 첫 연애였다.

거의(?) 라는 말에 약간의 어색함이 있지만.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은 없었다. 몇 번의 영화를 보는 일과 밥을 먹었던 사람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그 친구와 특별한 사이라기보다는 남들보다 '친한'관계였기 때문이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당신은 불쑥 내 평범한 일상에 들어온 아주 '낯선 사람'이었다.


매일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는 일상에 '당신'과 공유하는 것들이 생겼고, 으레 친구들과 보내던 주말의 우선순위는 '당신'이 되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약간 어색했던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서서히 알게 되어 친해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남자 친구'가 되어버린 당신이 생겼다.


나는 그런 당신과 어떻게 간극을 좁혀나갈지 고민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작되었던 건 일종의 '호구조사(?)' 였다. 이렇게 말하니 웃기지만, 뭘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 같다는 그런 마음에서였다. 우리는 길 하나를 두고 살았기 때문에 동네의 05번 마을버스를 타고 내가 좋아하는 대청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그다지 덥지 않았던 여름날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기억력이 조금 더 좋은 편이었는데,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저녁을 먹고 난 후 만났다. 당신은 주황색 폴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 또한 편한 차림으로 마을버스에 탔다.


굳이 동네에 산책로가 있고, 공원이 있음에도 일원동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갔던 이유는 역시 좋아하는 것에 대한 나의 '우직함' 때문이었다. 나는 그 공원을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흔쾌히 받아주었던 당신의 배려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는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월요일 걱정 없이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킁킁 냄새 맡기 바쁜 강아지들이 있었다. 우리는 대청공원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주 시시콜콜한 것부터.


오늘 교회 다녀온 이야기, 저녁으로 닭백숙을 먹었다는 것. 밖에 있기에 너무 덥지 않은 날씨였던 흐릿하게 느껴지는 그날의 날씨. 그러다 시작된 호구조사. 초, 중, 고등학교 이야기. 친한 친구는 몇 명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혈액형은? 뭐 그런 이야기들. 대청공원 맞은 편의 공원 분식을 좋아하며 떡볶이가 1인분에 천 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들떴던 기억.


우리의 이야기는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되었다. 당신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길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꽤 긴 거리였다. 마을버스를 타고 10 정거장도 넘게 온 거리였기에. 그럼에도 우린 걸으며 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 어떻게 가까워지는 걸까? 서로를 알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표면적으로 당신을 알게 된 시간이었지만, 뭐랄까. 여전히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좋아하는 감정으로 '만나'보자고 했지만 여전히 낯선 사람.


당신은 걷다가 문득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는 얼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진 주공아파트 단지가 있는 길을 걸어가며 붉게 물든 가로등 불빛 아래서 당황했다. 당신은 내게 물었다.


" 왜, 싫어요? "

" 아니요. 음... 제가 할게요! "


나는 제법 높았던 당신의 어깨에 까치발을 하고는 손을 척 올렸다. 그때 당신은 나만큼 당황했던 것 같다. 아닌가 황당했던 건가. 어깨에 얹힌 내 손을 잡는다.


" 그냥 손 잡고 걸어요. "


나의 보폭에 맞춰 한 걸음 물러나 주었다. 이 표면적 호구조사만큼, 우리는 아직 어깨에 손을 올릴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이해해주는 당신의 모습에 또 조금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자연스레 그런 '인위적'인 시간을 갖지 않았어도 우린 충분히 가까워졌을 텐데 나는 경험해본 적 없는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시간이 쌓이면 될 일이었다. 스물다섯의 나는 그렇게 어리고, 미숙하고, 순수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기다려준 당신 또한 그런 사람이라 생각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보다 성숙한 사람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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