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참 그래요.

사랑해서 더 외로웠던 날

by 으네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 바스락 거리며 단풍잎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늦은 가을이었다. 우리가 만난 지 두 해가 지난가을이었던 것 같다. 그때를 떠올리면 흐린 주말, 한산한 지하철 역사와 버스 안. 지독히도 아프게 앓았던 인후염과 깜깜한 사무실에 홀로 켜져 있던 내 책상의 컴퓨터 불빛이 떠오른다.


그즈음 당신은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연락이 뜸했고, 일주일에 한 번도 보지 않고 지나가던 시간도 있었다. 건조하고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당신이 나를 칼칼하게 했다. 내게 한없이 따듯했던 사람이 멀어져 가는 걸 느낄 때만큼 울렁이는 일이 또 있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신이 내게서 멀어져 갔던 건 나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는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 나까지 신경 쓸 여력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니 소원해졌다고 생각했다. 나를 더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동안 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그 붕 뜬 기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울렁거림이 계속되었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차가움에 대해 제대로 묻지 못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여전히 당신을 사랑했다. 마음이 식었다는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식었다 한들 붙잡고 싶었다.


여전히 기억하는 편린 같은 감정들.



로꼬의 '니가 모르게'를 자주 들었다. 난 오늘 밤도 네가 모르게 너를 떠올린다는 가사가 팍 박혔다. 그래서 그 음악을 들을 때면 여전히 그때의 감정이 콩콩 튀어 오른다.

회사를 다니며 주말에 학원을 다녔다. 이대 어귀에 있는 학원. 수업을 끝내고 집에 올 때마다 나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당신이 나를 기다리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기에. 버스 정류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당신을 마주한다면, 나는 그 무엇도 묻지 않고 꼭 안고 싶었다.


당신이 내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팠다. 열이 올랐고, 눈물이 왈칵 날만큼 목이 아팠다. 인후염이었다. 침을 꼴깍 삼킬 때마다 따가웠다. 덕분에 마음도 잘 삼켜지지 않았다.


마음이 참 그렇다. 커지면 커질수록 애가 탄다. 사람을 종종 거리게 한다. 당신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그랬다. 멈추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연락이 되지 않는 몇 시간 동안 수 없는 카톡을 치고 말고를 반복. 괜히 시선을 돌리기 위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도 무용지물. 이태원의 챔프 커피에 가서 커피를 마셔도, 그날이 좋은 거리를 거닐어도 어둑한 기분이 나를 애워쌌다. 생각해보니, 그때 참 당신이 야속했다.


우리는 그때 두 번 헤어지자 말했다. 한 번은 당신이, 한 번은 내가. 결국 헤어지지 않았지만 그만큼 심각했다. 그때 난 '아 내 첫 연애는 끝인가'라는 생각이 아니라. 당신이 없는 내 시간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스물다섯에 만나 고작 2년을 보냈는데 당신 없이 살았던 시간들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아득했다. 그렇게 내게 큰 존재가 되어 있었다. 무서웠던 것 같다. 그때 당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본 것 같다.


당신은 높은 파도가 아니라, 넘실넘실 내 발을 적셔 서서히 깊어졌던 사람이었다. 나를 에워싼 그 물이 나의 것인지 당신의 것인지 나눌 수 없어졌다. 내 것이기도 하고 당신의 것이기도 해서 나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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