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비록 일찌감치 낙방했지만, 영재고 대비 과정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중에도, 선생님들을 앞에 두고 진행된 모의면접의 기억은, 강렬하다.
물리학이란 무엇인가요?
물체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려는 학문입니다
절정의 짧은 시간만 남은 그 날의 기억은 스냅 비디오처럼 몇 번이고 반복재생 된다. 당시의 열정을 기반으로 한 당당함을 추억하다보면, 과학을 오해한 채로 좋아하던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움으로 회상을 끝맺는다.
대상이 눈에 빤히 보이는 역학(물론 고전역학)에 흥미를 보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진도를 따라가기만도 벅찼기에, 당시엔 과학이 진리라는 대중적인 오해에 의구심을 갖지 못했다. 우주에 묻힌 물리법칙을 발굴해내는 고고학자라는 멋스러운 인식도 한몫했겠다.
고입의 실패는 물론 슬펐지만, 생활이 여유로워지면서 과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질량 사이엔 힘이 작용한다는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벗어나 ‘시공간을 굽히는 질량’이라는 개념을 채택해 질량이 없는 빛의 휘어짐을 설명해낸 아인슈타인으로의 이행. 쿤이 말한 과학혁명을 이해하며, 과학은 진리의 탐구가 아니라 현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에 가깝단 것을 알았다.
허탈함이 앞선 게 사실이다. 유일한 진리라는 절대성을 잃은 과학은 더 이상 숭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정도로 격하된 과학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없겠다고 까지 생각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과학에서 묻혀있던 기억을 재조명하며 의미로 엮어내는 수필의 우아함을 찾았기 때문이다.
현상이 모여 만든 우주처럼, 삶은 과거 사건의 집합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현상들이 절대적인 물리법칙을 제시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온 삶 속 아름다움을 찾고, 의미를 제시하며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건 온전한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