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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신년

ごゆっくりどうぞ

by SUKAVIA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진행되는 나만의 루틴이랄까. 신년 첫날에는 언제나 목욕탕에 간다. 동네 목욕탕을 갈 때도 있고 운이 좋으면 괜찮은 사우나, 여행 중이라면 호텔 욕실에서라도 한다. 물론 동네 목욕탕에 가는 것을 가장 좋아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처럼 되는 경우가 없으니, 가능하면 어디서라도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새해를 맞이하려 노력한다.


About IBARAKI by SUKAVIA


이바라키 대중 목욕탕 やまの湯 ⓒ Photo_SUKAVIA



31일에서 1일로 넘어가는 시간은 평범한 하루의 몇 시간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일 년에 하루정도, 오늘 같은 날은 정신 좀 차리려고 한다. 하지만 역시나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처럼 되는 경우가 없다.


Izakaya in Ibaraki ⓒ Photo_SUKAVIA



연말 송년회를 일본의 조그마한 소도시, 이자카야에서 60분짜리 레몬사와(レモンサワー) 무제한으로 마시며 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될 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2024 홍백가합전 ⓒ Photo_SUKAVIA



숙소로 돌아와 목욕을 하고 누워 홍백가합전을 시청한다. 연말 각종 시상식을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었다. 가족 중에 일본인이 있으면 자연스레 일본과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물론 가족 중에 베트남인이 있다면 베트남이 가까워지고 미국인이 있다면 미국이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겠다. 그런 이유에서 일본은 꽤나 가까운 나라다.




이바라키 ⓒ Photo_SUKAVIA



절묘하다. 카톡 메신저에 뜬 부고를 확인한 것 역시 두 번째 사와를 마시던 중이었다. 가까운 지인이 아니었기에 응답은 하지 않았지만 연초부터 장례식장으로 발길을 옮겨야 하는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적어도 나만의 행복을 조금 더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산노마루 대욕장 ⓒ Photo_SUKAVIA



2만 5천 원. 이제는 2만 5천 원을 내야 목욕탕에서 세신을 할 수 있다는 편집장의 한 마디. 세신 요금이 얼마나 빠르게 오르는지,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루틴을 지키기 위해 가까운 대중 목욕탕에 방문했다. 일본도 새해 연휴에는 목욕탕이 사람들도 넘쳐나기는 마찬가지다. 가격도 평상 시 보다 100엔이 비싸다.


이바라키 공항버스 ⓒ Photo_SUKAVIA



이바라키 공항에서 미토역까지 40분.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신년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휴일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문을 연 곳이라고는 프랜차이즈 밖에 없다. 스키야와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동네 산책. 마땅히 할 것도 없다. 소도시의 감성이라고 하기엔 무료하다. 산노마루 호텔에 신년 초부터 연박이다. 연말 숙박 요금이 저렴했다면 연말부터 연초까지 쭈욱 머물렀을 텐데 연말 하루가 평상시 보다 비싸서 하루만 다른 곳에서 머물렀다.


大浴場 ⓒ Photo_ Sannomaru Hotel



산노마루 호텔 지하 1층에는 작은 대욕장이 있다. 물론 객실에도 목욕을 할 수 있는 욕조가 있지만 물을 받을 시간이면 대욕장에 도착한다. 여행 중 피로를 푸는 것도 좋지만 새해 루틴을 지키기 위한 잔 꾀라고나 할까. 대욕탕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작은 목욕탕이다. 6개 남짓한 샤워기 시설과 적당한 사이즈의 온탕 하나가 전부지만 이용자가 그리 많지 않아 항상 한가롭다. 대욕장은 15:00~22:00까지 운영한다. 따뜻한 온수에 몸을 담그고 생각한다. 4:10분. 노토 지진 1주년은 기념하는 방송이 온종일 방송되고 있다. 제주항공과 관련된 뉴스들도 네이버에 온종일 올라오고 있다.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 ⓒ Photo_SUKAVIA



오랜만에 다시 보는 방송.

家、ついて行って イイ ですか?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

이미 방송이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새해 특집 편성인가 보다.

1월 1일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방송.

이 방송 보면서 참 많이 울고 웃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저녁 먹을 곳들이 금일 모두 영업을 일찍 종료한 까닭에 로손과 패밀리마트를 들러 주전부리를 털어왔다. 호텔 방에서 방자카야를 하면서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처럼 방송을 보고 있다. 엔딩곡은 역시 오랜만에 듣는 미라지의 험 Home.

물론 여기까지는 프로그램이 종료되기 2년 전 영상이다. 52세의 아버지와 10살 딸.



일본 방송 ⓒ Photo_SUKAVIA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찾은 아버지와 딸. 아버지는 54세가 되었고 딸은 12살이 되었다.

왠지 밝고 듬직해진 딸.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일본의 특집 방송은 한 번 시작하면 웬만해선 끝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4시간, 5시간, 6시간! 점점 더 짧아지는 콘텐츠 시대에 이렇게 긴 특집 편성이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만큼 여운이 길다.




이바라키 ⓒ Photo_SUKAVIA



1월 2일 휴일이 되자 버스 스케줄이 달라졌다. 구글지도에서 알려주는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한 시간을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이바라키 현청 25층에 올라왔다. 25층에 올라오니 이바라키 카공족들이 경치 좋은 전망대 자리를 벌써 다 잡고 작업 중이다. 나도 잠시 키보드를 켜고 몇 자 적어본다.


이바라키 현청 전망대 ⓒ Photo_SUKAVIA



버스를 타고 낯선 여행지에서의 나들이. 특별할 것 없이 시작하는 2025년. 아니 어쩌면 특별할 것 없이 시작하기에 더욱 특별하지 모르겠다. 몇 킬로 되지 않는 거리를 몇 시간 만에 도착했지만 결코 아깝지 않은 경험, 낯선 풍경을 담고 오랜만에 소도시에서 어리버리. 결코 그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바라키의 소박한 도시의 모습은 마치 구글 버드뷰로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Mito Station in Ibaraki ⓒ Photo_SUKAVIA




독한 감기였을까? 아니면 유행하는 독감이었을까?

기억 속에서 하루가 사라졌다. 1일 3회 분의 약을 먹고 침대 위에 쓰러진 지 Almost 24시간 만에. 호텔 객실 앞에 걸어둔 'Do not Disturb' 푯말이 'make a room'으로 바뀌기 전까지 그렇게 쓰려졌다.


이바라키 미토 ⓒ Photo_SUKAVIA



사경을 헤매는 처절한 사투 끝에 다행히 정신을 차렸고 오한과 발열이 반복되는 도무지 견뎌낼 수 없는 떨림을 힘겹게 견뎌냈다. 아쉬움은 크지만 하루종일 우울할 만큼 흐린 날씨 탓에 그리 아깝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침 햇살에 눈을 떠서 전 날보다 조금 나아진 몸 상태에 감사하며 다시금 약을 먹고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왔다.


일본 약국 ⓒ Photo_SUKAVIA



그러보 보니, 약국에서 구입한 약의 약효가 좋다. 그래서 일본에만 오면 그렇게도 약들을 사나 보나. TV 광고 속 신제품을 먹게 될 줄이야. 혹시라도 감기 기운이 있다면, 가까운 약국에 들러 신제품을 구입해보길.


Saza Coffee in Ibaraki ⓒ Photo_SUKAVIA



소도시라고 해도 새해 정초, 활력이 넘쳐난다. 어쩌면 저녁 무렵 다시 통증이 재발할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괜찮은 몸. 스타벅스를 물리친 사자커피에서 커피 한잔을 주문해서 마신다.


사자 커피 ⓒ Photo_SUKAVIA


'ごゆっくりどうぞ'

천천히 즐기라는 직원의 말처럼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동안에는 마치 해독제처럼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하루 정도 푹 쉬고 다시 도쿄로 가면 된다. 도교로 가서 계획했던 일정대로 진행하면 된다.


Trip in Ibaraki ⓒ Photo_SUKAVIA




산노마루 호텔 ⓒ Photo_SUKAVIA



별 의미 없는 하루가 또 지나갔다. 한 호텔에서 4박을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서인지 건조한 호텔 객실이 나름 내 방처럼 편안해졌다. 4시간 5시간 점점 늘어만 가는 신년 특집 SP 방송들을 보면서 호텔 방안에서만 지내는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의미 없어 보이지만 나에겐 가장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다.


감기약 파브론에스 프로 ⓒ Photo_SUKAVIA



평소 좋아하는 일본 CM과 광고들을 보면서 이번 달 혹은 올 겨울, 봄, 2025년 트렌드를 살펴볼 수도 있다. 유행 혹은 유행할 것 같은 아이템도 가장 빠른 TV 광고 속 아이템을 살피면 된다. 물론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도 호텔 방에서만 틀어박히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지만.


미토역 ⓒ Photo_SUKAVIA



아무튼 소도시에서의 짧았던 일주일을 보내고

복잡한 도쿄로 상경할 시간이다.

어쩌다 보니, 2025년의 시작을 이렇게 하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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