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Signal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곤 한다. 오늘 같은 날이 평생에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주 오랜만에 근교로 여행을 떠나 왔다. 하루정도 머리도 식힐 겸 캠핑카들이 모여있는 카라반 캠핑장. 할인된 금액에 예약을 하고 기분 좋게 친구와 인근 마트에 들러 저녁에 구워 먹을 고기도 조금 샀다. 눈이 내린 다음 날이라 아직 녹지 않은 하얀 눈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 남아있어 운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배정된 캠핑카로 필요한 짐들을 옮기고 드디어 짧은 휴식. 그런데 스마튼 폰을 아무리 찾아봐도 와이파이 시그널이 뜨지 않는다. 그리 먼 오지도 아니고 처음엔 일시적 장애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와이파이를 검색, 아무런 시그널이 뜨지 않는다. 벽에 걸린 TV 리모컨도 보이질 않는다. 이상함을 감지, 캠핑장 주인에게 물어보니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TV를 볼 수 없다. 설정일까? 아니면 공지를 하지 않는 것인가? 물론 데이터를 사용하면 되지만 이상하게 시그널이 약하고 불안정하다. 졸지에 캐빈 폰 책에서나 읽던 노 시그널 상황이 되었다. 비록 일시적 단절이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이내 밀린 원고와 사진도 정리하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적을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물론 저장을 하고 인터넷이 잘 터지는 내일 발행할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인터넷 없이 하루를 보내게 생겼다.
이 글이 오늘 저장된 발행으로만 끝났으면 나는 디지털 디톡스에 성공한 것이겠지만 현실은 그것이 아니다. 전날 잠들기 전까지 사용한 데이터는 이번달의 절반을 넘겼고 체크아웃보다 2시간이나 빠르게 나와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았다. 하루는 커녕 3시간도 못 버틴 자신이 조금 한심스럽지만 어쩔 수 없음이다. 아침 일찍 마신 드립 커피보다는 머신으로 내린 에스프레소에 따뜻한 스팀 밀크를 더한 라테가 맛있고 No wifi 보다는 시그널 빵빵한 속도 속 와이가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준다. 어쩔 수 없는 디지털 중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