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아침 일기 #7 평화와 방황 사이를 걸어 다니며

by 수카 Sukha


1월 30일 오후 12시 40분, 더운 여름날, 오랜만에 브런치 창을 켜며 호주 캔버라 책상에서.


#0. 아침이라 부르기 민망한 시간이지만 아침 일기를 올리고 싶으니 이 글을 아침 일기라고 하겠다. 글을 쓴 지 한참이다. 2020년 5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일주일에 한 편씩 브런치에 글을 올렸었다. 매주 한 편씩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떻게 글을 써 내려가야 할지 고민하던 일 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난 지는 한참이지만, 사실 그 후로도 계속 글을 쓰는 삶을 살았다. 석사 논문에서 사촌과 주고받았던 엄마에 대한 편지로, 파리의 갤러리에 관한 에세이로, 가끔 전시 리뷰로, 글의 종류는 계속 변해갔지만 글을 쓴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글을 쓰는 게 무서워진다. 책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3년에 걸쳐 쓴 내 책은 나올 듯 나오지 않고 있다. 다음 달에는 책이 출판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다사다난했던 그간의 여정 때문인지 그 일이 정말 일어날 거라고 쉽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표지도 정해지고 편집도 완료됐으니 나올 거라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있지만, 어쩐지 현실감이 없다.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책에 대한 걱정이 들어 글을 쓰지 못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쓰지 않으면 점점 더 못쓰게 될 것 같아 오늘은 글을 쓰기로 했다.


#1. 스스로를 끝없이 정의하고 증명해내야 한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작년 가을, 한국에서 어느 때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드디어 내가 무언가가 되어간다고, 여태까지의 노력이 조금씩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추위가 살에 스미기 시작하던 늦가을에 한국을 떠나며, 나는 계절을 거슬러 올랐다. 한국의 늦가을과 호주의 늦봄은 기온이 비슷했지만 어쩐지 무척이나 다르게 느껴졌다. 다가올 추위를 대비해야 할 가을과 달리 호주는 계속해서 더워지기만 했으니까. 한국은 여름인 작년 6월, 호주에서 겨울을 보내며 콩국수가 먹고 싶었던 것처럼 내 몸은 어디에 적응할지 몰라했다. 그렇게 더위를 맞이해야 할지, 추위를 대비해야 할지 방향성을 잃어버린 내 몸처럼, 다 잘 되어가는 것만 같았던 내 진로도 갑자기 방향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바빴던 갤러리 일이 거짓말처럼 뚝 끊기고, 쓸 일도 할 일도 많았던 책 출판도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갑작스레 조용해진 일상이 어색했다. 좋기도 했다. 밤낮없이 일하고 고민하던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휴가라고도 느꼈다. 시간이 남아 미뤄만 두었던 운동도 시작하고, 계속해서 도전해보고 싶었던 일인 한국어 교원이 되기 위한 과정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일상은 운동하고, 잘 챙겨 먹고, 공부하는 제법 충실한 시간들로 채워졌다. 생각보다 한국어 교원이 되기 위해 할 일이 많아 바쁘기도 했다.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여유로운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2. 그런데 왜일까. 가끔 자기 전에 눈물이 났다.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을 괴롭힌 것도 아니고, 남들과 비교하며 청승 떤 것도 아닌데, 심지어 하루하루 평화롭다는 생각도, 그래서 감사하다는 생각도 자주 했는데, 하염없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종종 찾아왔다. 과연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책이 나오기는 하는 걸까. 한국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 과연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게 가능할까. 미술계에서 일하기 위해서 그동안 달려왔던 시간이 모래처럼 손 위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나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다시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꼭 처음 파리에서 살기 시작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 자신을 큐레이터라고 하기에는 전시를 한 번 기획해 본 게 다고, 갤러리스트라고 하기에는 현재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작가라고 하기에는 내 이름으로 나온 책 한 권 없는데. 그렇다고 한국어 선생님이라고 소개할 수도 없었다. 난 한국어 선생님 준비생이지, 가르치는 학생 한 명 없으니까. 미술 일을 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관련 일을 해야지, 왜 다른 공부를 하고 있냐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억울했다. 나는 미술 일을 포기한 게 아니고 계속 찾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둘 다 잘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런데 딱히 내세울 게 없었다. 그래서 그랬나. 얼마 전 요가에서 선생님이 나눠 준 카드에 쓰여 있던 "무언가를 그만두고 싶다면 왜 그 일을 처음 시작했는지를 생각해라"는 문구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나는 왜 미술 일을 하고 싶어 했던가. 처음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았던 그 강렬했던 순간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는 미술에 빨려들 듯 그 공간 안에 계속 있고 싶어 졌고, 그것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렇게 미술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게 글을 쓸 수 있는 글이기를 바라며, 여태까지 달려왔다. 그런데 그 마음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갑작스레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그 마음만으로 충분할 수는 없는 걸까? 그것만으로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좌절스럽다.


#3. 직함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하나의 단어만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증명할 수 있다는 건 무지막지한 혜택이다. 모르는 사람을 마주치고 스스로를 소개할 일이 많은 외국 살이에는 특히 그렇다. 나의 삶의 궤적을 줄줄이 늘어놓을 수 없어 나는 가끔은 그냥 집에서 노는 사람이 되기를 택한다. 스스로에게도 그렇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서, 이 항해에서 어디로 키를 잡아야 할지 도무지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이사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내 인생에 가본 적 없는 나라으로의 이동은 또 어떻게 내 삶을 바꾸어 놓을까. 정신없이 매일 짐을 싸며 곧 또 다른 곳에 놓일 내 몸과 함께, 내 마음이 놓여야 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본다. 일단 지금보다 자주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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