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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카 Sukha Jun 23. 2020

MBTI는 편견을 만든다.


MBTI가 유행하면서 곳곳에서 MBTI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ENFP라면 이럴 것이고 ISFJ면 저럴 것이다 하는 식으로 우리 스스로와 타인을 MBTI 유형에 과도하게 끼워 맞추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나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성격을 하나로 판단 내리게 하는 잣대를 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MBTI의 항목은 범주의 개념이라 E에 가까운 I 있을 수 있고 I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I가 있을 수 있어, 같은 I형 유형이라 할지라도 각각의 성격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의해야 한다. 정말 이렇게 MBTI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성격을 정해진 틀로 가두고, 또 다른 편견을 만드는 것일까?




질문에 바로 대답하자면 나는 MBTI가 편견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편견을 갖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일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편견 편견을 갖고 살았다. 남자는 이것이고, 기독교 신자는 저럴 것이고, 미국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하는 식의 편견들을 갖는다는 것은 굉장히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라면 어떠한 편견도 없이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지. 하나하나 천천히 알아가면서 누군지를 파악해야지. 첫인상만으로나 남의 말만 듣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지. 마음속에 하나하나 깊게 새겼던 말들이다.


나는 남자 친구와의 연애에서도 의도적으로 편견을 피했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중 그를 처음 만난 이래로 나는 항상 그를 '외국인' 남자 친구로서가 아닌 그 사람 자체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나와 다른 그의 어떤 부분을 발견할 때면 그게 그 사람만의 특별하고 독특한 성격이라 생각했다. 이런 방식이 남자 친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부분을 발견했을 때 생겼다. 주로 정치사회 이슈에 대이야기를 하던 순간들이었다. 가끔씩 그는 예상외의 얘기를 했고, 나는 나와 다른 그의 생각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 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고, 그런 생각을 하는 그가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화해하고 넘어간다 해도 여전히 그의 생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뜻밖에 그를 이해하게 된 것은 같이 일하던 독일인 동료 덕분이었다. 한국인 남자 친구가 있는 그녀와 나는 연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고, 종종 남자 친구와 싸울 때면 서로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는 했다. 그리고 그와 어떤 문제로 새벽까지 싸우다가 결론을 맺지 못하고 직장에 출근했던 날, 씩대며 화를 내는 나를 보던 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혹시 그녀가 내 남자 친구의 생각을 듣고 그를 나쁘게 생각할까 봐 걱정되어 말하기 주저했다. 그런데 조심스레 꺼낸 내 말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그녀에게서 들려온 말은 남자 친구와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한번 들어본 얘기라도 되는 양, 아직 말을 꺼내지도 못한 내 남자 친구의 의견들을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 예상외의 반응에 내가 가만히 있자 그녀는 알겠다는 듯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한국에서 오래 살아 한국문화를 아니까 네 생각도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남자 친구 의견에 동감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받아온 교육과 자라온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인 동료는 계속해서 환경 차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줬고, 나는 처음으로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의견과는 여전히 달랐지만 배경을 듣고 나니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독일인 동료를 통해 그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왜 그 전에는 그의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그를 외국인으로서 바라보지 말아야지'라는 내 안의 강력한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외국인으로서 안 본다는 것이 편견 없이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를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한국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와 다른 그의 성장배경이나 환경을 무시하고 나의 잣대와 기준에서 그의 생각의 흐름을 판단것이다.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국가와 MBTI 성격유형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하지만 그가 나와 다른 사람이고, 그 안에 숨겨진 배경을 알려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내가 그가 호주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려하기 시작하자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처럼, MBTI도 그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나즉흥적이고 여유로운 나와 달리 계획적이고 꼼꼼한 그의 성격이 기하고 이상하다고만 생각해왔지만, 그가 INTJ라는 것을 알고 나자 그게 그가 선호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예전의 내 실수처럼 내 잣대에서 그를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내가 '다르다'는 걸 더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편견을 싫어한다. 하지만 가 편견에 지나치게 거부감을 갖는 것은  다른 사람을 더 깊이 할 수 있는 배경지식을  는 걸 가로막기도 한다. 래서 나는 남자 친구는 INTJ니까 이런 상황에서 이런 것을 좋아하겠지 하는 생각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다만 그 예상과 달랐을 때 '넌 왜 INTJ인데 이렇게 행동 안 해!'가 아니라 그 예상과 다른 모습을 즐거운 예외로 받아들일 줄만 알면 된다.


비록 편견이 될지라도, 편견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고쳐나갈 수 만 있다면 MBTI와 같은 하나의 기준을 갖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 아닐까.


우리는 그저 서로를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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